치즈 좋아하세요? 토핑과 간식으로 즐기던 치즈가 언젠가부터 식탁의 중심으로 들어왔어요. 샐러드나 파스타의 풍미를 끌어올리고, 와인과 페어링하면 미식의 영역을 한뼘 더 확장해주죠. 하지만 선뜻 새로운 치즈에 도전하기는 망설여집니다. 조금 어렵고 낯설어서요. 그렇다면 최고의 치즈만 엄선한 ‘김소영 아티장의 안단테’를 기억하세요. 장인의 철학과 계절의 흐름이 담긴 아티장 치즈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내가 걷는 속도로
음악 악보의 안단테(andante)는 느리게 연주하라는 말입니다. 직역하면 ‘천천히 걷는 속도로’라는 뜻이에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걸음 걸음, 과연 얼마나 천천히 걸어야 할까요?
미국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작은 치즈 공방, 안단테 데이어리에서 치즈를 만드는 김소영 님은 안단테를 ‘내 걸음걸이 속도’라고 정의합니다. 그 삶은 자신만의 속도를 지켜왔거든요.

김소영 님의 이름 뒤에는 수공 장인을 뜻하는 ‘아티장’ 칭호가 붙습니다. 두 손만으로 최고의 치즈를 빚어내기 때문이죠. 김소영 아티장은 페탈루마 지역에서 얻은 신선한 원유로 그만의 치즈를 만듭니다.
치즈에 빠진 과학자
김소영 아티장은 식품공학과 생명공학을 전공했습니다. 1990년대 초, 미국에 박사 학위를 따러 갔지만 공부할수록 행복하지 않았대요. 그러던 어느날 훌쩍 떠난 프랑스 여행에서 인생의 향방이 바뀌었습니다. 알자스 지방의 치즈숍에서 맛본 염소 치즈 때문이었죠.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맛이었어요.
액체 같은 로카마두르 치즈*를 마시듯 먹었는데, 그 지역의 자연이 담겨있는 것 같았죠.”
*프랑스 케르시 지방에서 염소의 생유를 써서 숙성시킨 소프트 치즈
6백여 종의 치즈가 있는 곳에서 그는 결심했습니다. 치즈를 만들어야겠다고. 먼저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주립대 낙농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에서 치즈의 원료가 되는 우유를 공부했고 치즈는 독학했어요. 치즈 공방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받아주는 데가 없었거든요. 이때 전에 배운 공학 지식을 발휘했습니다. 치즈의 맛과 향, 질감을 느끼며 레시피를 유추했죠.
1999년, 캘리포니아 북쪽의 작은 도시 페탈루마에 치즈 공방 안단테 데이어리를 차렸습니다. 목장과 붙어 있어 신선한 염소젖을 구하기 쉬웠어요. 김소영 아티장은 전에 없던 독창적인 치즈를 만들었습니다. 염소젖에 타임을 넣고(듀엣) 붉은 후추로 치즈를 장식하거나(론도), 소금에 재를 섞어 뿌려 검은빛 치즈(아카펠라)를 만들었죠.

독창적인 치즈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프렌치 런더리’의 전설적인 셰프, 토마스 켈러가 일찌감치 알아봤습니다. 이후 다른 미쉐린 레스토랑들의 요청이 이어졌지만, 아무리 유명한 셰프라도 몇 년을 기다려야 했어요. 100%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안단테의 치즈는 한 주 생산량이 100kg 정도거든요. 정말 운이 좋다면, 유기농 식재료를 판매하는 홀푸드마켓의 샌프란시스코 일부 매장에서 아티장의 치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컬리와 손을 잡다
그즈음 한국의 치즈는 노란색 슬라이스 치즈나 피자 토핑용 모짜렐라 제품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김소영 아티장은 풍부한 치즈의 세계를 국내에 알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수작업으로 극소량 생산하고 유통기한이 짧은 안단테의 치즈를 들여올 순 없었습니다. 대신 전 세계의 훌륭한 아티장 치즈를 수입해 판매하기 시작했죠. 이름이 나면서 백화점 식품관에서 김소영 아티장의 이름을 건 전용 코너를 만들자고 했지만, 거절했습니다.
“백화점은 큰 매대를 다 채워야 하는데 팔리는 양은 적거든요.
못 팔면 그대로 재고가 되죠.
아티장 치즈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2016년, 좋은 채널을 찾았습니다. 서비스 출시 1년차의 컬리였죠. 자체적으로 엄선한 치즈 상품들이 김소영 아티장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품질과 성분을 꼼꼼히 따져 직매입*한 상품을 주문한 다음날 새벽까지 신선하게 가져다주는 샛별배송은 치즈 유통에 적합했죠. 그래서 컬리 김슬아 대표에게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김 대표는 처음에 스팸 메일인 줄 알았어요. 자타공인 치즈 ‘덕후’에게 세계 최고의 치즈 명장이 직접 연락한 거였으니까요.
*직접 사서 판매함

“치즈같이 우리나라에 아직 덜 알려진 상품군은 오프라인 채널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컬리 김슬아 대표
온라인에선 전국 어디에 사는 브리야사바랭* 팬이라도 상품을 구매할 수 있고 저희는 데이터로 판매량을 예측해 폐기를 최소화할 수 있죠.
이동, 보관, 배송까지 온도를 유지하는 풀콜드체인으로 품질 관리도 철저하게 할 수 있어요.
만약 전국 수백개 마트에서 이걸 판다면, 모든 매장에 1개씩 놓을 수도 없고 고객에게 자세히 상품 설명을 하기도 어렵지 않을까요?”
*프랑스의 유명한 미식가의 이름을 딴 트리플 크림치즈. 최소 1주 이상 숙성해 수분 함량이 높고 아주 연한 조직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새로운 치즈를 판매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티장 치즈는 온도에 민감해서 아무리 좋은 치즈라도 유통 과정에서 온도가 맞지 않으면 금방 망가졌어요. 치즈 속의 곰팡이가 호흡하며 물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기 때문이죠. 그래서 김소영 아티장은 물류센터 세팅부터 시작했습니다.
“초반엔 예상보다 빠르게 치즈 상태가 나빠졌어요.
물류창고 안에서도 위치마다 온도와 습도가 달랐거든요.
팬 바로 앞은 습도가 거의 0%고 엄청 추워요.
팬에서 먼 곳은 온도가 2~3도 차이 나고 바람도 안 불죠.
컬리에 처음 요청한 게 온도계를 서른개 정도 사서 창고의 주요 위치마다 두고 모니터링하는 것이었습니다.”
담당 MD는 그때부터 일주일에 3번 이상 창고에 와 온도를 추적했습니다. 물류 창고 내 온도 지도를 만들었죠. 최상의 치즈를 판매하기 위해 유통 환경부터 갖춘 것입니다.
그렇게 컬리와 김소영 아티장의 안단테 프로젝트가 출발했습니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15개의 치즈만 모았죠. 하지만 낯선 아티장 치즈는 매출에서 고전했습니다. 유통기한이 짧은 고급 치즈가 쌓이자 컬리의 전 직원이 그걸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소진해야 했어요. 꼬릿꼬릿한 숙성 치즈 샌드위치는 식문화에 진심인 컬리 직원들에게도 낯설었습니다.
매출이 늘어난 것은 2020년부터였습니다. 컬리를 자주 이용하는 충성고객 중심으로 반응이 왔어요. 특히 팬데믹으로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 문화가 퍼지면서 치즈를 비롯한 고급 안주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컬리는 대중에게 익숙한 치즈부터 단단한 하드 치즈나 고급 크림치즈까지 차별화된 상품을 내놨어요. 새롭게 치즈를 소비하는 문화를 제시하며 2023년, 안단테 치즈의 판매액은 22억 원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아티장이 고른 치즈들
2024년 기준, 컬리에서 판매하는 안단테 치즈 상품은 60여 개입니다. 이중 나에게 맞는 치즈는 무엇일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치즈 전문가가 있는 상점에 가는 겁니다.
치즈에 해박한 사람이 어떤 치즈가 좋은지 추천해주는 숍이요.
한국은 그런 곳이 아직 많지 않아서 스스로 입에 맞는 치즈를 찾아가야 합니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먹어보면서 맛이 연한 게 좋은지, 센 게 좋은지 확인해보는 게 좋아요.”
치즈를 고르는 건 와인을 고르는 일과 비슷합니다. 와인의 맛은 포도가 자란 지역의 토양과 날씨, 재배 방식이 결정하죠. 그래서 생산지나 와이너리를 보고 와인을 골라요. 치즈도 마찬가집니다. 지역의 자연 환경이 원유를 낳는 가축과 치즈 가공 방식에 영향을 주고, 그 지역 치즈만의 특색을 만듭니다.

“지역별로 유명한 아티장 치즈를 찾아 먹어 보면 특색을 더 잘 알 수 있고, 치즈 맛에 대한 감각을 깨울 수 있어요.
원유 종류별로 맛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물소유로 만든 치즈는 아주 리치하고 목초의 풍미가 진하게 느껴지죠.
염소 치즈는 특유의 시큼한 향이 납니다.”
자연스럽게 계절과 함께 흘러간다
아티장 치즈는 자연을 담고 있습니다. 공장에서 만든1 치즈는 늘 균일한 맛을 내는 게 목표지만 아티장 치즈는 그렇지 않죠. 자연과 계절의 변화, 만든 이의 손길과 감성이 깃듭니다. 김소영 아티장은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 용어들로 치즈 이름을 붙여요.
“아티장 치즈는 대중적인 음식이 될 수 없어요.
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일이고 다양한 치즈를 알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의 꿈은 우리나라에서 치즈를 만드는 것입니다. 국내 목장에서 건강하게 키운 소에서 우유를 얻어 좋은 치즈를 만들 수 있길 바라죠. 지금 한국은 별도의 숙성 기술이 필요없는 생치즈까지 대부분 수입하고 있어 소비자들이 비싼 가격을 지불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땅에서 나온 원유로 생치즈부터 숙성 발효 치즈까지 다양한 치즈를 만드는 것이 아티장의 최종 목표예요.
“치즈는 정직해요.
마음을 다한 만큼 결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싶어요.”
우리의 자연과 계절이 흐르는 치즈를 만드는 일. 그 꿈2이 이뤄질 때까지 ‘김소영 아티장의 안단테’는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갈 것입니다.
[시리즈 소개] 밑더브랜드 Meet the Brand
좋아하는 브랜드, 있으신가요? 장바구니에 자주 담는, 낯선 ‘신상’도 여기라면 믿고 살 수 있는 브랜드. 하나쯤은 있을 텐데요. 컬리다운 큐레이션은 각자 고유의 철학과 색깔을 가진 브랜드들로 완성됩니다. 그들이 탄생한 이야기 속으로 초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