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큐레이션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좋은 큐레이션을 전합니다. ‘좋은 것을 많이 볼수록 나에게 좋은 것을 알아본다’는 믿음으로, 브랜드, 콘텐츠, 공간 등 매달 하나의 큐레이션 사례를 소개합니다.
“‘마이너’한 주제인 과학이 ‘사양산업’인 책방과 만났을 때”

과학책방 갈다가 문을 연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운영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미영 총괄은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과학을 주제로 책방을 연다는 게 그만큼 도전적인 일이었다는 의미였죠. 알쓸 시리즈의 김상욱 교수부터 유튜버 궤도까지, 많은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의 노력 덕분에 과학이 어느덧 우리 곁에 가까워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어렵고 낯선 주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큐레이션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바로 이렇게 잘 모르고 낯선 분야를 접할 때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분야일수록 우리는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친절한 안내를 필요로 하니까요.
과학책방 갈다는 바로 그런 공간입니다. 과학과 친해지고 싶지만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탄생했죠. 과학이 하나의 문화이자 교양으로 자리 잡는 시대에, 좋은 과학 콘텐츠를 엄선해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이들을 서로 연결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제 곧 7주년을 앞둔 삼청동의 작은 동네 책방은 과연 어디까지 그 꿈을 이뤄냈을까요? 오늘의 큐레이션 공간으로 ‘과학이 문화가 되는 곳’, 삼청동의 과학책방 갈다를 소개하려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제가 과학책방 갈다를 찾은 건 날씨가 유난히 좋았던 주말 오후였습니다. 책방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제 눈길을 끈 건, 한쪽에서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곳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다양한 북클럽과 워크숍도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날 제가 목격한 모임은 ‘갈다 신간 읽기 클럽’이었던 것 같더라고요.

모두가 놀러 가기 바쁜 주말, 굳이 시간을 내어 과학책을 읽으러 모인 사람들. 갈다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애정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처음부터 과학자와 과학 저술가 등 100여 명이 넘는 과학 애호가들이 주주로 참여해 의기투합했다고 하죠. 이들을 이끄는 이명현 대표 역시 천문학자입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공간 곳곳에서 과학에 대한 진심이 묻어났습니다. 천장에는 태양계의 천체들이 아기자기하게 방문객을 맞이했고, 잔잔히 흐르는 음악조차도 과학이라는 주제에 어울리게 특별히 선곡된 플레이리스트였습니다. 심지어 ‘갈다’라는 책방 이름마저 과학자 갈릴레이와 다윈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하죠.
특히 그날 책방을 지키고 있던 두 직원 분의 모습은 이곳의 매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했습니다. 이번 달 들어온 책 중 자신이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책방에 들어와 있다며 들뜬 모습을 보였던 것부터, 손님이 과학 소설 추천을 요청하자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추천을 아끼지 않는 모습까지. 갈다는 정말로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이는 공간이라는 인상을 강렬히 심어 주고 있었습니다.
문턱을 낮춰야 발길이 닿는 법입니다
하지만 과학책방 갈다는 단지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좋아하는 과학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그 매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죠. 그래서인지 이곳 곳곳에선 과학을 어떻게 쉽고 재미있게 소개할지에 대한 세심한 고민들이 느껴졌습니다.
혹시 과학이 정말 재밌다고 느껴진 순간이 있으신가요? 우리가 과학을 멀게 느끼는 이유는 아마 학창 시절 교과서와 시험 문제로만 과학을 접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과학이 단순히 ‘학습’이 아니라 일상 속의 ‘교양’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과학과 만나는 접점부터 새롭게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성인이 되고 나서 가장 과학이 흥미롭게 느껴졌던 순간은 보드게임 ‘테라포밍 마스’를 했을 때였습니다. 테라포밍이란 지구 외의 다른 천체에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작업입니다. 화학자가 직접 설계한 이 게임은 실제 과학 원리를 절묘하게 담아내고 있죠. 지하수를 추출해 물을 만들거나 소행성을 충돌시켜 기온을 높이는 등, 게임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주와 과학에 관심이 생기고 더 많은 지식을 탐구하게 됩니다.

과학책방 갈다 역시 이렇게 쉽고 친숙한 방식으로 과학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방이 자리한 1층에 이어, 2층의 카페 공간에는 간단히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게임과 퍼즐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테라포밍 마스’도 책방 한쪽에서 발견할 수 있었고요. 또한 서가 한쪽에선 ‘갈다 만화방’이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과학을 소재로 한 다양한 만화책을 누구든 편히 읽을 수 있도록 꾸며 두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과학과 친숙해지도록 말이죠.
그리고 여기서 갈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바로 ‘과학 방탈출 게임’을 직접 제작한 겁니다. 과학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탄탄한 스토리와 과학적 원리를 담은 콘텐츠는, 과학은 전혀 모르는 ‘태생 문과’라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도록 세심히 설계했다고 하죠.

저 역시 처음엔 바로 이 방탈출 게임에 호기심이 생겨서 과학책방 갈다를 방문했었는데요. 이미 거의 모든 시간대가 이미 매진될 만큼 많은 사람이 이 콘텐츠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미리 알지 못하고 책방을 찾은 사람들은 예약 없이는 참여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아쉬워할 정도였으니까요.
과학책방 갈다는 사실 삼청동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우연히 들리기 쉬운 장소는 아닙니다. 하지만 다소 불리한 입지에도, ‘과학’이라는 어려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문턱을 낮추고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려 노력한 덕분에, 붐비진 않을지언정 꾸준히 사람들이 찾아오는 따뜻한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참고로 이번 과학책방 갈다의 방탈출 ‘우주탐험’ 테마는 아쉽게도 6월 29일까지만 운영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매년 새로운 콘텐츠로 다시 찾아온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꾸준히 소식을 살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제약 덕분에 더 깊은 고민이 담겼습니다
물론 과학 방탈출 게임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멋진 장치이긴 했지만, 과학책방 갈다의 진짜 중심은 단연 1층에 자리한 서점 공간이었습니다. 다만 생각보다 그 공간은 아주 아담했습니다. 원래 이명현 대표가 가족들과 함께 살던 주택을 개조해 만든 곳이라고 하니, 그 크기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결과였죠. 하지만 이런 제약은 의외로 더 깊고 밀도 높은 큐레이션으로 이어졌습니다. 서가가 크지 않기에 책을 더 많이 들이는 대신, 더 ‘좋은 책’을 엄선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겁니다.
갈다에는 매달 신간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당연히 과학 교양서적이라고 모두가 서가에 꽂히는 건 아닙니다. 이명현 대표와 이미영 총괄을 비롯한 갈다 식구들이 직접 읽고 고른 책만이 공간에 놓이게 되죠. 큐레이션 기준도 명확합니다. 지나치게 정보 위주 거나 교과서처럼 딱딱한 책은 과감히 제외하고,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교양 과학서’ 중심으로 구성한다고 합니다.

대형 서점에 가면 누워 있는 책과 서가에 꽂힌 책 사이에 눈에 띄는 차이가 있죠. 사람들의 시선은 대개 테이블에 진열된 책으로만 몰리고, 그 책들은 수십 권씩 쌓여 있곤 합니다. 하지만 갈다에서는 그런 진열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신간도 여러 권을 쌓아두기보다는 한두 권만 비치돼 있고, 서가 자체가 눈높이에 맞게 구성돼 있어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과학 분야만 놓고 보면 대형 서점 못지않은 구색을 갖췄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였고요.
그래서인지 저도 책을 고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국 두 권을 구매했는데, 다시 찾았을 땐 그중 한 권이 이미 다른 책으로 교체돼 있었습니다. 큐레이션이 매달 바뀌고, 추천 도서도 계속 순환되다 보니,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 만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갈다를 자주 들르게 만들고, 결국 책을 사게 되는 자연스러운 이유가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또한 책을 분류하는 방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리, 생물처럼 익숙한 분류뿐 아니라, ‘동물’, ‘식물’, ‘인체’, ‘진화’, ‘호르몬’ 같은 더 세분화된 키워드로 정리돼 있어서 흥미롭게 다가왔고요. 각 카테고리 앞에는 짧은 문구가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예컨대 물리 코너에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작동 원리가 궁금하다면’이라는 소개가 붙어 있었는데, 과학이 어렵게만 느껴지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하나의 작은 포인트였죠.

책들 사이에는 작은 메모들이 꽂혀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책「보이지 않는」앞에는 투명 망토의 원리와 투명 인간의 존재를 언급하며, 빛과 물질에 대한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자극하는 문장이 적혀 있었죠. 단 몇 줄 짜리 문구였지만, 책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고, 실제로 제가 산 책 중 하나도 그 메모에 이끌려 손이 갔던 것이었습니다.
책방 그 이상으로 확장합니다
처음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과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세심하고도 친절한 큐레이션이 곳곳에 배어 있던 공간. 과학책방 갈다는 삼청동 끝자락이라는 위치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제가 머무는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았다는 점에서, 과학이라는 주제를 더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갈다의 바람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죠.
그런데 공간의 매력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건, 어쩌면 무모해 보였던 이 도전이 어느덧 7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과학이라는 ‘마이너’한 주제를 다루는, 그것도 독립책방이라는 ‘사양 산업’ 속에서 말이죠. 이 긴 시간 동안 갈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책방을 넘어 경험과 콘텐츠, 커뮤니티로 끊임없이 확장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는데요.
앞서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과학책방 갈다는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공간이자 커뮤니티를 지향합니다. 지금도 북토크, 독서 클럽,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며, 과학에 빠진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어울릴 수 있는 장을 만들어가고 있죠. 그렇게 이 공간을 사랑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고, 또 주변에 소개하며 새로운 방문자들이 이어지게 되고요. 이를 통해 꾸준히 책이 팔리고, 서점이 지속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겁니다.

더욱이 책방의 큐레이션도 점점 더 외부로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시도는, 갈다가 직접 고르고 서평까지 쓴 책들을 엮어 소개하는 신간 큐레이션이었습니다. 서점 한편에는 이 목록을 하나의 책처럼 제작해 판매하고 있었고, 일부는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신간선정위원회’는 갈다의 서가를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책방 밖에서도 좋은 책을 만나고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확장된 큐레이터 역할을 하고 있었던 셈이죠.
이 가이드북에서 갈다는 자신을 ‘과학 콘텐츠 그룹’이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책방을 넘어, 좋은 과학 콘텐츠를 선별하고 소개하며, 그 과정을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갈다의 방향성이 고스란히 담긴 표현이었죠. 혹시라도 어떤 계기로든 과학에 흥미가 생기셨다면, 삼청동 끝자락에 자리한 이 특별한 책방을 한 번 들러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과학이 어렵게 느껴질수록, 오히려 과학책방 갈다의 친절한 큐레이션이 더 빛을 발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