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이탈리안 가정식을 선보이는 톰볼라. 문전성시를 이루던 레스토랑은 2010년대 들어 주변 상권이 기울며 위기를 맞습니다. 김주환 대표는 컬리와 함께 이 시기를 돌파했어요.
✨ 1편 ‘전에 없던 이탈리안 가정식 톰볼라’에서 이어집니다.

2018년, 서래마을에서 40년간 운영해 온 중식당 ‘함지박’이 문을 닫습니다. 근처에 식당 이름을 딴 함지박 사거리가 있을 정도였기에 충격이 컸죠. 그들은 폐업하며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김주환 대표는 이를 보며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해야겠단 마음을 굳혀요. 하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 헤맸습니다.
“어느 날 한 기업에 관한 칼럼을 읽었는데, 그 브랜드의 경영 전략이 ‘가장 잘 하는 걸 하라’였어요. 머리를 쳤죠. 내가 왜 밖에서 찾고 있지? 우리가 잘 하는 게 여기 있는데! 그때 라자냐를 해야겠다 했죠.”
– 톰볼라 김주환 대표
듀엣 : 컬리와 함께 만든 간편식
톰볼라의 대표 메뉴, 라자냐의 상품화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지인이 당시 떠오르는 컬리를 적극 추천했어요. 정성스레 고른 좋은 상품만 파는 곳이라고요. 그해 가을, 김주환 대표는 톰볼라의 팬이었던 컬리의 MD를 만나 라자냐 간편식* 구상에 들어갑니다. 당시 컬리는 샛별배송의 강점을 살려 간편식 상품군을 확장하고 있었어요. 유명 베이커리의 빵, 직접 찾아가기 힘든 전국 맛집 메뉴를 내놓으며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간편식 : 밀키트, 냉동식품 등 복잡한 조리 없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식품
음식을 상품으로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제조 설비를 갖춘 외부 공장에 위탁(OEM*)하거나 직접 공장을 차리는 것. 대량 생산엔 OEM이 유리하지만, 김주환 대표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톰볼라에서 제공하는 맛을 그대로 구현하는 게 최우선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단체손님을 위해 연회장으로 쓰던 3층을 간편식을 제조하는 설비 공간으로 바꿉니다.
*OEM : 주문자의 의뢰에 따라 주문자의 상표를 붙여 판매할 상품을 만드는 위탁생산 방식.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의 약자.
이 시기 프랑스 유학을 마친 김주환 대표의 막내딸이 귀국해 간편식 사업을 돕습니다. 레스토랑 운영을 돕고 영업을 하며 컬리에서 판매할 간편식의 패키지를 디자인했죠. 지금은 든든한 사업 파트너인 김안나 영업이사입니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어요. 매장에서 만드는 그대로 출시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냉동을 거치니까 그 맛이 안 나는 거예요. 매일 소스의 농도, 파스타 익힘 정도를 조정하며 실험했습니다.”
– 김주환 대표“그렇게 첫날 만드신 게 60개밖에 안 됐어요. 원래의 맛이 나는 대량 생산 레시피를 만드는 데 5-6개월이 걸렸습니다.”
– 김안나 이사
김안나 이사는 이 시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김주환 대표에게서 라구* 냄새가 진동했고, 매일 식탁 위엔 실패한 라자냐가 올라왔거든요.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니 상품 패키징하는 방법을 몰라 온 가족이 모여 포장 박스를 손수 접었습니다. ‘기생충 가족 같다’는 한탄을 하면서요.
*라구 : 다진 고기를 붉게 양념해 만든 미트 소스. 라자냐의 핵심 요소다.


2019년 11월, 마침내 컬리에 톰볼라 라자냐 3종이 출시됩니다. 볼로네제 라자냐, 새우 라자냐, 시금치 라자냐가 시작이었죠. 톰볼라의 등장으로 컬리에서 라자냐 붐이 일었습니다. 다른 라자냐 제품들까지 매출이 뛰며 라자냐 카테고리 전체를 일으켰어요. 2020년엔 피자 4종 등으로 상품군을 늘렸습니다. 볼로네제 라자냐와 버섯 피자는 지금까지 가장 인기가 높은 톰볼라의 대표 상품이에요.

2020년, 팬데믹으로 또 한번 위기가 옵니다. 늘 북적이며 따뜻한 분위기던 식당이 비현실적으로 텅 비었어요. 이 시국을 잘 버틸 수 있었던 건 컬리에 출시한 간편식의 역할이 컸습니다. 코로나 기간 톰볼라의 외식 매출은 30% 이상 줄었지만, 간편식 매출은 크게 성장했어요. 2021년 톰볼라 상품의 매출은 13억 원으로, 처음 간편식을 출시한 해보다 두 배 높은 성장을 이뤘습니다. 간편식 제조를 위해 6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하며 고용을 창출하는 놀라운 성과를 냈죠. 톰볼라의 간편식 매출은 이때부터 전체 사업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며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습니다. 2024년까지 볼로네제 라자냐의 매출만 29억 원, 버섯 피자는 10억 원에 달하는 판매고를 냈어요.
간편식의 수요가 폭증하며 2022년, 김주환 대표는 외부에 더 큰 공장을 짓습니다. 하지만 역시 다른 공장들과는 달라요. 톰볼라의 주방을 그대로 넓혀 놓은 수제 공방 같은 곳입니다.
“라자냐는 오전에 재료를 하나 하나 자르기 시작해요. 오후에 4-5시간 저으면서 졸여야 볼로네제 소스가 나옵니다. 그걸 하룻밤 식히고 다음날 라자냐로 굽기 시작하죠. 찍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생산량은 많지 않지만, 품질 유지가 최우선입니다.”
– 김주환 대표“저는 OEM을 알아보자고도 했었어요. 대표님 이제 연세도 많으신데 계속 생산에 몸 담으면서 고생하시니까 속상해서요. 하지만 그렇게 타협하지 않은 결과가 늘 좋아서 저는 이제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 김안나 이사
톰볼라의 레시피는 수작업이 많습니다. 자동화가 어렵고 인건비가 높은 이유죠. 김주환 대표는 목표하는 생산량에 맞춰 공장 설비와 작업 인원을 설계했습니다. 작업 프로세스를 쪼개고 단위화해서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효율화 맵을 짜서 운영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발효된 피자 반죽을 숙성고에서 막 꺼내면 도우(dough) 온도가 5~8도 정도 돼요. 10도 이상이어야 도우를 피기 편하고 빨라요. 그래서 반죽 온도를 미리 재보고 꺼내놓든가, 온도가 알맞으면 성형 직전에 꺼내든가, 이런 걸 계속 조절해요. 라자냐는 충진* 한번 할 때 한 사람이 하면 1시간 30분, 두 사람이 하면 50분이 걸려요. 충진이 끝나면 그걸 오븐에 넣고 바로 다음 작업을 시작해야 하죠. 이 시간이 딱딱 맞아 떨어지게 하는 거예요. 거기에 따라 하루 생산량이 확 달라집니다.”
– 김주환 대표“이런 디테일은 정말 직접 다 해보셨기 때문에 나오는 노하우예요.”
– 김안나 이사
*충진: 재료를 틀에 넣어 채우는 것
앙상블 : 길이 공명하는 백년기업을 향해

벌써 23년차, 부녀가 협업하는 톰볼라는 이제 손님들도 대를 이어 찾는 단골 식당이 됐습니다. 개업 때부터 온 마을 주민부터 어릴 때 가족들과 오다가 이곳에서 소개팅을 해서 낳은 자녀와 함께 오는 손님, 한국에 올 때마다 찾아 오는 외국인 고객들까지. 컬리에서 간편식을 구매해 맛보고 직접 매장을 찾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톰볼라가 ‘그대로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해요.
“처음엔 이런 게 미워 보였어요. 건물도 낡았고 음식도 올드한 것 같고, 다른 화려한 곳들에 비하면 너무 소박하고… 이제 변화를 줘야 하지 않냐고 했었는데, 고객 분들이 오히려 여긴 절대 바꾸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 김안나 이사“우리의 정체성이 뭐냐 하면 전 주저 없이 이탈리안 전통 음식이라고 해요. 전통이라는 건 수백수천 년을 거쳐 검증돼 온 거잖아요. 한 지역, 한 민족이 오랜 시간 갈고 다듬어 성숙해서 만들어진 문화죠. 이건 실패할 수가 없어요.”
– 김주환 대표
전통을 추구하는 톰볼라는 시대와 함께 호흡하고 있습니다. 현재 컬리에서 판매하는 톰볼라 간편식은 10개. 트렌드와 고객 반응에 따라 새로운 메뉴가 수시로 들고 납니다. 지금은 두부 라자냐를 개발 중이에요. 육류 소화가 어려운 사람들도 부담 없이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서죠. 라자냐의 기본인 라구 소스는 돈육과 우육, 베이컨 등 3가지 육류를 사용하는데 이 자리를 두부와 비지로 채운다는 구상입니다. 컬리와 협의해 윤곽이 잡히면 레스토랑의 단골들을 상대로 맛보인 후 피드백을 받을 생각이에요.
“두부 라자냐는 요즘 저속노화 트렌드에 딱 맞는 좋은 상품입니다. 출시하면 정말 좋겠는데, 샘플을 먹어 보니 두부가 기존 라자냐와 달리 씹는 맛이 없어서 식감을 살리는 다른 재료를 추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 황세영 MD · 컬리 상품본부
테너였던 김주환 대표는 세대를 관통하는 곡을 즐겨 듣습니다. 바흐, 바그너, 슈트라우스의 음악들이죠. 공통점은 듣기 편하고 깊이 심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추천곡은 ‘4개의 마지막 노래(Four Last Songs)’. 노년의 슈트라우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 삶을 사색하며 쓴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입니다. 모든 삶을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궁극적인 편안함이 느껴지는 곡이에요.
“좋은 소리는 어딘가 닿고 되돌아 오는 소리예요. 공명이라고 하죠. 물리적으로 센 소리는 그냥 가 버리고 돌아오지 않아요. 화려해 보이지만 가슴을 치지 않는, 공명을 일으키지 못하는 소리죠. 톰볼라의 음식도 그러면 좋겠어요. 저희 음식을 먹고 기억에 남아 다시 한번 찾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거기 공명이 있는 거겠죠.”
– 김주환 대표

밑더브랜드(Meet the Brand)는 브랜드를 만든 사람에 집중합니다. 그만의 철학과 삶으로 초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