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큐레이션 이야기] 여행자와 동네를 세심하게 잇는, OMO 호텔의 큐레이션

2025.08.25

기묘한 큐레이션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좋은 큐레이션을 전합니다. ‘좋은 것을 많이 볼수록 나에게 좋은 것을 알아본다’는 믿음으로, 브랜드, 콘텐츠, 공간 등 매달 하나의 큐레이션 사례를 소개합니다.

“이 도시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05 omo 호텔 01
ⓒ트렌드라이트

여행을 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누구나 가는 명소도 좋지만, 가끔은 그 동네 사람이 된 듯 하루를 보내고 싶잖아요. 문제는 시간과 정보입니다. 한 달 살기가 아닌 이상 여정은 늘 빠듯하고, 동네를 즐기려면 많이 알아야 하는데, 관광지에 비해 늘 정보는 부족하다는 점이 제약이 됩니다.

도쿄 숙소를 찾다 우연히, 그러한 장벽을 스며들듯 낮추는 호텔을 만났습니다. 호시노 리조트의 도시 관광 브랜드 OMO(오모). 이들은 아예 ‘동네 모두를 우리의 리조트’라는 발상으로, 여행자를 지역의 리듬 속으로 단계적으로 초대합니다.

오늘은 OMO가 어떻게 동네와 상생하며, 로컬 경험을 한 번에 훅이 아니라 조금씩 스며들게 큐레이션 하는지, 제가 묵었던 OMO5 도쿄 오쓰카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살펴보려 합니다.

단계적으로 스며들게 합니다

OMO 호텔의 이름에는 숫자가 붙습니다. 공항 호텔을 제외한 도심형 라인업이 OMO1·3·5·7로 나뉘는데, 서비스 범위를 뜻한다고 해요. 제가 묵었던 OMO5 도쿄 오쓰카는 부티크 호텔로, 카페 스타일의 조식이 제공되는 것이 특징이고요. 7은 풀서비스, 3는 베이직, 1은 캡슐로 구분되는 형태죠.

05 omo 호텔 02
숫자로 구분되어 있는 OMO, 어떤 번호든 공통으로 있는 건 브랜드의 핵심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OMO호텔

그런데 숫자가 달라도 꼭 들어가는 기본 장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오모 베이스(로비 겸 커뮤니티), 고킨조 맵(직원 추천 동네 지도), 오모 레인저(지역을 사랑하는 스태프가 이끄는 액티비티). 이 셋이야말로 “동네를 통째로 리조트로 만든다”는 OMO의 철학을 단계적으로 구현하는 핵심입니다.

우리가 어떤 큐레이션에 빠져들기까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잘 맞는 인연이라도 첫 만남에 곧장 결혼을 얘기하긴 어렵잖아요. OMO의 세 가지 장치는 ‘맛보기 → 가이드 투어 → 자유 투어’의 순서로, 숙박객과 동네 사이의 거리를 차근차근 좁혀 줍니다.

먼저 오모 베이스는 단순한 로비가 아닙니다. 아침엔 조식 레스토랑, 낮엔 웰컴 티 등을 즐기는 카페, 밤엔 작은 이벤트 공간으로 변신합니다. 곳곳에는 오쓰카 로컬 상점·브랜드와 협업한 굿즈 코너가 있어 지역의 결을 먼저 맛보게 하게 하는데요.

여기선 지점마다 다른 특별 이벤트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오쓰카 지역은 지금은 한적한 동네가 되었지만, 과거에 매우 번화한 곳이었다고 해요. 특히 ‘음악의 도시’로 알려질 정도로 문화적으로도 융성했다고 하죠. 그래서 그런지 호텔에서는 밤마다 오쓰카 레트로 DJ 나이트가 열렸습니다. 흔히 떠올리는 디제잉 파티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바이닐로 흐르는 전성기 오쓰카 때의 음악들은 자연스레 발걸음을 동네로 돌리게 했습니다.

05 omo 호텔 03
뜬금없어 보이던 레트로 DJ 나이트도 다 동네의 역사를 고려하여 기획한 이벤트였습니다  ⓒ트렌드라이트

다음은 오모 레인저 액티비티입니다. ‘오쓰카 오타쿠’라 자칭할 정도로 동네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스태프의 안내를 따라 동네 한 바퀴 도는 투어가 기본인데요. 함께 걷는 순간 평범한 간판 하나, 골목 하나에도 이야기가 붙습니다. 익숙한 풍경이 맥락을 얻으며 특별한 경험으로 바뀌게 되는 거죠.

05 omo 호텔 04
고킨조 맵은 로비에서 입구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오며 가며 참고하기 쉬웠습니다 ⓒ트렌드라이트

그리고 뒤이어 스스로 탐방해 보고 싶어질 때쯤 고킨조 맵이 진가를 발휘합니다. 구글 평점이나 타베로그*로는 찾기 어려운 진짜 로컬 맛집과 놀거리가 압축돼 있어, 이번엔 도움 없이 직접 동네 투어에 나설 수 있습니다. 저도 이 지도에 나온 곳들을 찾아다니며 오쓰카라는 지역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맛집 정보 서비스

여행 가서 동네 목욕탕, 가보셨나요?

이번 여정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오쓰카 기념탕 세트였습니다. 동네 대중목욕탕이자 노포인 오쓰카 기념탕을 이용할 수 있는 입욕 바구니와 지도, 타월, 게타(나막신)까지 챙겨 주는 액티비티였죠. 키트를 받아 들고 문을 여니, 정말 어린 시절 동네 목욕탕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졌습니다.

05 omo 호텔 05
오쓰카 기넨토는 정말 일반적인 동네 목욕탕 그 자체로 정말 로컬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트렌드라이트

알고 보니 오쓰카 기념탕은 다이쇼 시대(1910년대)부터 자리를 지켜온 ‘노포 중의 노포’였더라고요. 그럼에도 사전 검색을 꽤 해봤지만 한국어 후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솔직히 OMO의 큐레이션이 아니었다면 절대 못 찾았을 곳이에요.

사실 일본 여행에서 온천이나 호텔 대욕장은 익숙하게 찾는 곳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동네 목욕탕은 결이 다릅니다. 저에겐 어릴 적 목욕탕의 기억을 소환하는 순간이었고, 가족 단위 손님이 오가는 풍경 속에서 일본에선 이 문화가 아직 생활로 살아 있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저처럼 비슷한 문화권에서 온 여행자에겐 향수로, 처음 접하는 이들에겐 강렬한 로컬 체험으로 남을 거예요.

구글맵 후기를 훑어보니, 심지어 현지인들 사이에서 레트로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평이 좋았습니다. 외국인만의 이벤트가 아니라 로컬에게도 사랑받는 장소를 연결해 준다는 점에서, OMO의 큐레이션이 관광을 생활의 결로 낮추는 방식임을 다시 느꼈습니다. 정말 세심하게 접근하는 방식으로 통해 말이죠.

경험의 완성은 진정성에서 좌우됩니다

이렇게 만족스러운 숙박을 마치고 돌아오게 되었지만요. 사실 출발 전엔 걱정이 있었습니다. ‘호텔이 동네까지 묶어 하나의 리조트처럼 경험시킨다’는 말이 과연 실체가 있을까? 콘셉트만 번지르르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죠.

그런데 도착 직후 참여했던 첫 오모 레인저 투어가 그 우려를 곧장 지웠습니다. 처음 들른 상점가에서 노포 어르신이 레인저와 자연스럽게 안부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이 관계가 이벤트용이 아니라 평소에 쌓인 신뢰에서 나오고 있음을 느꼈거든요.

05 omo 호텔 06
 오모 레인저는 확실히 주민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 액티비티 중간 중간 잘 느껴졌습니다 ⓒ트렌드라이트

가장 기억에 남은 곳은 숙소 근처의 오래된 동네 찻집이었습니다. 방송에 여러 번 소개된 듯한 그 집의 주인 할아버지는 호탕하고 유쾌했죠.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대표 메뉴인 시원한 ‘녹차 de 얼그레이’를 한 잔씩 건네며 맞아 주셨고, 말이 완벽히 통하지 않아도 짧은 대화 끝에 어느새 이 동네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05 omo 호텔 07
정말 좋은 동네 작은 찻집을 찾는 건 물론, 주인 할아버지와 친해지는 건 OMO 없인 어려웠을 겁니다 ⓒ트렌드라이트

그때의 기억이 좋아서 이후 따로 동네 산책을 하다가 한번 더 가게에 들러 명물 중 하나인 말차 빙수를 먹었는데요. 너무나 반가워하시면서 계산대 앞 샘플보다 훨씬 더 많이 담아주시던 정까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습니다. OMO 호텔의 프로그램들이 방문한 관광객에게 동네를 큐레이션 하는 걸 넘어서 하나로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체감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체크아웃 즈음 한 번 더 놀랐습니다. 할아버지가 직접 개발했다며 자랑하던 그 ‘녹차 de 얼그레이’가 오모 베이스 한쪽에서 굿즈로 판매되고 있었고, 조식에 나온 녹차 역시 그 찻집 제품이었거든요. 로비에서 시작하여 투어와 굿즈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 이런 디테일이 쌓여 ‘동네를 리조트로’라는 말이 피상적인 콘셉트가 아닌 운영이 된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던 거죠. 이처럼 좋은 큐레이션은 한 번의 추천이 아니라, 세심하게 스며드는 연결에서 완성되니까요.

일본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늘 가던 명소 대신 동네의 결을 느껴보고 싶다면 OMO 호텔을 한 번 선택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동네에 스며들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큐레이션을 경험해 보실 수 있으니까요.

작성자 이미지

기묘한

‘사고파는 모든 것’에 대해 다루는 콘텐츠 창작자. 매주 2만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받아보는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 에서 인사이트를 전하고 있습니다. 책 <기묘한 이커머스 이야기>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