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큐레이션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좋은 큐레이션을 전합니다. '좋은 것을 많이 볼수록 나에게 좋은 것을 알아본다'는 믿음으로, 브랜드, 콘텐츠, 공간 등 매달 하나의 큐레이션 사례를 소개합니다.
“제일 비싼 스피커는 있어요. 그런데 꿈의 스피커는 따로 있습니다.
목표점이 다르기 때문에,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동차, 시계, 그리고 오디오. 우스갯소리로 ‘패가망신’으로 이끄는 3대 취미라 불리는 것들입니다. 이중에서도 끝판왕으로 꼽히는 것이 오디오인데요. 오디오가 이 리스트에 오르는 건 단지 비싸서만은 아닙니다. 각자가 좋아하는 소리가 다르고, 메이커가 추구하는 소리도 제각각이라 계속 바꾸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더욱이 오디오는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은 취미이기도 합니다. 직접 소리를 들어야 매력을 알 수 있는데, 막상 ‘청음’ 자체가 결코 쉽지 않으니까요. 좋은 오디오, 좋은 소리라는 걸 체감할 문턱이 너무 높았던 겁니다.
그러던 중 오디오의 매력은 물론 역사까지 한 번에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2024년, 세계 최초의 오디오 박물관 ‘오디움’이 서울에 개장한 건데요. 이곳은 시작부터 꽤 특이합니다. 일주일에 단 3일만 문을 열고, 하루 관람객도 100여 명 수준으로 제한하거든요. 제약이 많아 보이는데, 오히려 그 제약 덕분에 최고의 경험이 가능해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오디움 관람을 통해 ‘제약’이 만들어내는 큐레이션의 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지독한 제약이 최상의 경험을 만들어 냅니다
오디움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여긴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방문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습니다. 표 값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디움 전시는 완전 무료로 운영되고 있거든요.
대신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관람 인원과 시간이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매주 목·금·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개관하고, 하루에 딱 5개 회차만 열립니다. 회차당 참여 인원도 스무 명 남짓. 그러다 보니 오디움 티켓은 유명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만큼 구하기 어렵다고 하죠.

저도 겨우 취소표를 구해 마침내 오디움을 경험할 수 있었는데요. 처음엔 의아했던 이 강력한 제약이 왜 필요한지, 들어가자마자 바로 이해가 됐습니다. 오디움의 가장 중요한 전시물은 값비싼 오디오 ‘기기’ 자체가 아니라, 그 오디오가 내뿜는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이를 온전히 느끼려면 ‘청음의 순간’이 필수이고, 그건 자유 관람으로는 도저히 만들기 어려운 경험이었습니다. 실제로 약 2시간에 달하는 도슨트 프로그램은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를 만큼 꽉 차 있었고요.
직접적인 경험은 최고의 설득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합니다. 다만 늘 만족스럽냐고 물으면 꼭 그렇진 않습니다. 작품을 깊게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괜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나온 게 아닌 거죠.
그래서 가능하면 도슨트 프로그램을 찾아 듣곤 합니다. 제가 모르는 작가의 의도와 배경을 듣다 보면 감동과 경험이 확실히 배가 되니까요. 그럼에도 아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전시의 특성상 경험이 간접적이거나 단편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매장이나 박람회에서 제품을 직접 맛보고 써보는 것에 비하면, 경험의 밀도가 낮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오디움의 프로그램은 특별했습니다. 소수 인원이 전문가 도슨트의 인도를 따라 오디오의 발전사를 좇으며 배경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과정도 훌륭했지만요. 무엇보다 설명 못지않게 비중 있게 배치된 ‘청음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관람 중간중간 스피커의 음 전달력이나 기술 발전, 세월에 따른 소리 차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곡을 틀고 비교해 듣는 시간이 이어졌는데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비틀스의 ‘Yesterday’처럼 익숙한 선곡도 섞여 있어, 정말 오디오 애호가가 된 듯 깊게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가장 압권이었던 건 초대형 극장용 스피커 ‘미러포닉 M1’이 있는 별도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네 곡을 온전히 연달아 들으며 ‘청음 경험 그 자체’를 누릴 수 있었는데요. 그때의 강렬한 기억은 백 마디 설명보다 훨씬 오래 남을 것 같았습니다.
태도와 형식은 경험을 배가시킬 수 있습니다
소수 인원으로 제한하고, 자유 관람이 아닌 도슨트 프로그램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규칙 외에도 오디움에는 나름의 ‘형식’이 더 있었습니다. 어린이 관람객을 반기는 다른 전시들과 달리 14세 이상만 입장이 가능했고요. 마치 연주회를 감상하듯, 소리를 내지 않고 청음에 집중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관람객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듯했습니다.

이때 떠오른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어릴 적 크루즈 여행을 갔을 때였는데요. 일정 중 두세 차례 ‘정찬’이 있었고, 그때는 재킷과 셔츠 등 정장을 꼭 갖춰 입어야 했습니다. 덕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행 가방에 정장을 챙겨 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엔 불편하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엄격한 태도와 형식이 오히려 식사 경험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요즘 이러한 복장 규정에 대한 이견은 늘 있지만, 태도와 형식이 경험을 달라지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는 건 분명했거든요.
오디움의 까다로운 요구들도 비슷하게 작동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편하고 갑갑할 수도 있지만, 그 덕분에 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요. 오디오를 단지 글이나 설명이 아니라 ‘내 경험’으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에 담아내느냐도 내용물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좋은 경험을 제안하고 설득할 때, 결국 가장 강력한 건 공감각적인 경험이라고들 합니다. 파인 다이닝 셰프들이 맛을 완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플레이팅까지 공들여 설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시각적인 즐거움이 미각의 경험까지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니까요. 이처럼 때로는 내용물만큼이나, 그걸 담아내는 ‘그릇’이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디움은 특별했습니다. 오디오를 ‘보는’ 박물관이라기보다 ‘듣는’ 박물관에 가까운데요. 편하게 생각하면 최적의 온·습도 유지, 청음에 유리한 내부 구조, 방음 같은 기능적 요소만 잘 갖추면 된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디움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건물 설계 자체를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쿠마 켄고에게 맡겨, 미적 요소까지 경험의 일부로 끌어들였거든요.

더 인상적이었던 건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의미까지 부여했다는 점입니다. 밝은 알루미늄 파이프 2만 개가 수직으로 건물을 감싸 마치 숲 사이로 스며드는 듯한 인상을 만든다고 하는데요. 덕분에 박물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공간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집중을 끌어올립니다. 음향이라는 기능적 완성도 위에, 공간 경험까지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해 관람의 밀도를 더한 셈이죠.
효율이 늘 답이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추천하고, 제안하고, 경험시키려 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 몰두하곤 합니다. 물론 효율과 볼륨이 필요한 순간도 분명 있습니다. 더 많은 이들에게 큐레이션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면, 일정 부분은 포기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그럴수록 놓치기 쉬운 것이 ‘경험의 밀도’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좋은 경험은 때로 불편과 제약, 그리고 비효율에서 나오기도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오디움은 좋은 선례입니다. 큰 공간을 지어놓고도 일주일에 딱 3일만, 그것도 하루 최대 100여 명의 관람객을 무료로 받는다는 결정은 겉으로 보면 미련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관람객에게는 최상의 경험이 가능해졌죠. 이런 ‘불편이 주는 감동’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으시다면, 어렵지만 오디움 티켓을 구하는 일에 한 번쯤 도전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