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큐레이션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좋은 큐레이션을 전합니다. '좋은 것을 많이 볼수록 나에게 좋은 것을 알아본다'는 믿음으로, 브랜드, 콘텐츠, 공간 등 매달 하나의 큐레이션 사례를 소개합니다.
“번잡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사실 이보다 더 정갈할 수 없습니다.”

잠실 롯데월드몰에서는 수많은 팝업스토어가 열립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사람이 몰리는 곳들이 있는데요. 이렇게 관심이 쏠리는 곳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딱 봐도 시선을 빼앗는 요소를 갖춘 경우가 많죠.
지난 7월 열렸던 ‘현대기물&박그릇’ 팝업스토어는 그런 면에서 다소 특이한 사례였습니다. 멀리서 봤을 땐 그릇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것처럼 보였고, 도대체 왜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거든요. 이름도 백화점 팝업이라기엔 어딘가 정감이 갔는데, 실제로 현대기물은 남대문 그릇도매상가를 대표하는 35년 전통의 상점이었습니다.
큐레이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보통 잘 정제된 무언가를 떠올리곤 합니다. 큐레이션으로 유명한 브랜드나 매장을 가도 대체로 정갈한 진열과 세심한 연출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고요.
흔히 줄여서 현대기물이라 부르는 이 매장은 그런 면에서 더욱 특별했습니다. 얼핏 보기엔 어수선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질서와 배려가 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고객에게 더 좋은 경험을 만들어주고 있었고요.
'찾는 재미' 그 자체를 큐레이션 합니다
겉보기엔 별난 부분이 딱히 보이지 않는데도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를 알고 싶어, 직접 남대문 도매상가를 찾아가 봤습니다. 외관부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트렌디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정말 평범한 도매상가처럼 보였죠.

그런데 3층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넓은 도매상가 한가운데, 현대기물과 박그릇 매장에만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었거든요. 그릇들이 진열된 모습은 예전 팝업에서 봤던 것처럼 다소 무질서해 보였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릇을 제대로 살펴보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던 고객들이 “그릇 깨지는 소리가 안 나는 게 신기하다”라고 말할 정도였죠.
다만 현대기물 매장은 주변의 다른 도매 매장들과 비교해도 여러모로 눈에 띄긴 했습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건 특유의 진열 방식이었습니다. 다른 곳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릇 매장처럼 용도와 종류, 색상, 브랜드에 맞춰 상품을 정갈하게 펼쳐놓고 있었는데요.

반면 현대기물의 그릇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종류끼리 모여 있긴 했지만, 얼핏 보면 대충 놓은 것처럼 산처럼 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래서 오히려 그릇들이 더 예뻐 보였다는 점입니다. 알고 보니 그 방식 자체가 의도된 것이었기 때문이었죠.
4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박병수 대표는 손님이 봤을 때 그릇이 예뻐 보이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무작정 쌓아둔 것이 아니라, 다 원래 자리가 있다는 거죠. 실제 얼마 전 방영된 SBS 〈생활의 달인〉에 출연했을 때도, 제작진이 무작위로 섞어둔 그릇들을 모두 제자리로 찾아 놓았을 정도고요.
그래서인지 고객들 역시 얼핏 보면 정리가 안 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자세히 보면 구분이 되어 있어 오히려 보기 좋다고 말합니다. 그 안에 숨어 있는 질서를 알아본 겁니다.

이런 진열은 예뻐 보이는 것뿐 아니라 의외의 효과도 만들고 있었습니다. 각을 맞춰 정갈하게 진열해 두면 그 자체로 시각적인 매력은 생기지만, 오히려 그 질서를 깨기 어려워 자유롭게 물건을 살펴보기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반면 현대기물의 그릇들은 마음대로 들어보고 살펴보는 일이 훨씬 편했습니다. 애초에 그냥 쌓여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덕분에 이곳을 방문한 고객들은 하나같이 ‘찾는 재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4만 가지가 넘는 그릇을 헤집어 보며 우리 식탁에 어울리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 현대기물은 바로 그 경험 자체를 큐레이션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겁니다.
재미있는 불편들만 남겨 둡니다
물론 이와 같은 경험은 양날의 검일 수 있습니다. 보물찾기 같은 경험은 분명 재미있지만, 동시에 불편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릇은 내가 원하는 용도나 스타일이 비교적 분명한 경우가 많은데, 정확한 구획이 없는 매장에서 그것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현대기물은 친절한 응대로 이를 보완하고 있었습니다. 매장을 보면 손님도 많지만, 주황색 조끼를 입은 직원들도 정말 많습니다. 공간이 그리 크지 않은데도 갈 때마다 십여 명은 되어 보이는 직원분들이 늘 바쁘게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이분들은 정말 1인 다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손님들이 살펴본 그릇을 다시 예쁘게 진열하는 것부터 가격 안내, 상품 추천, 결제, 포장까지 모두 챙기고 있었죠. 그래서 가격표나 안내판이 거의 없었음에도, 물건을 볼 때 크게 불편하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마음껏 헤집으며 찾아보는 경험은 그대로 남겨두되, 특정한 상품을 찾거나 궁금한 점이 생기면 즉각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분명 도매 매장인데도, 단순한 안내를 넘어 정말 세심하게 설명해 주는 장면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면기를 찾는다고 하면 전자레인지와 식기세척기 사용이 가능한지, 라면은 몇 개까지 들어가는지까지 상세하게 알려주시더라고요. 덕분에 구경만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파란 바구니 안에 그릇을 잔뜩 담아 구매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다소 뜬금없어 보였던 모형 음식들도 알고 보면 이러한 배려 중 하나였습니다. 그릇은 음식을 담았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우리 집 식탁에 어울리는지도 그때서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요. 그래서 매장 곳곳에 그릇과 함께 놓인 모형 음식들은, 실제로 음식을 담았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도록 돕는 장치였던 겁니다. 뒤늦게 그 의도를 알고 나니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세심한 배려들이 있었기에, 현대기물은 어쩔 수 없이 불편한 구석이 있음에도 머무는 시간만큼은 좋은 기억으로 남는 매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은 그 어디보다 정갈합니다
그런데 현대기물의 진짜 매력은 오프라인 매장만 봐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공식 온라인스토어와 인스타그램, 블로그까지 함께 봐야 경험이 완성되기 때문인데요. 현대기물은 그릇 도매가게답지 않게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1만 명이 넘습니다. 네이버 블로그도 정말 열심히 운영하고 있고요.

이곳에서는 말 그대로 여러 꿀팁을 얻어갈 수 있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 방문 전 꼭 알고 가야 할 점을 정리해 두었는데, 앞서 소개한 것처럼 직원분들을 찾아 도움을 받으면 좋다는 가이드도 담겨 있었고요. 여러 이벤트와 신상품 입고 소식도 주기적으로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간혹 유명한 브랜드나 매장들도 휴무일 안내처럼 기본적인 정보를 놓쳐, 애써 방문하고도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기물은 소셜미디어는 물론 네이버맵이나 카카오맵 같은 지도 서비스에도 여름휴가 일정을 상세히 안내해두고 있더라고요. 이런 부분에서도 정말 디테일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온라인 채널의 백미는 ‘현대기물&박그릇 그릇 조합 가이드북’이었습니다. 앞서 여러 차례 언급했듯 현대기물 매장의 진열은 얼핏 보면 정말 무질서해 보입니다. 예쁘게 조합해 정갈하게 진열해 두는 일반적인 큐레이션과는 확실히 궤를 달리하죠.

그런데 이 가이드북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큐레이션 요소가 정말 잘 담겨 있었습니다. 어울리는 그릇들을 한데 모아 사진으로 예쁘게 보여주고 있었고요.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서는 아예 음식을 담은 컷들을 모아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실 현대기물 매장은 도매상가 안에서는 큰 편이지만, 늘 많은 고객이 몰리다 보니 체감상 협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안에서 상품 하나하나를 추천하고 조합해 보여주는 건 사실상 쉽지 않죠. 그래서 매장에서는 ‘찾는 재미’를 남겨두고, 공간의 제약이 없는 온라인에서는 오히려 소수의 상품을 선별해 보여주는 큐레이션을 배치한 점이 정말 영리하게 느껴졌습니다.

실제 현장에서도 많은 고객이 온라인몰과 자체 계정을 띄운 휴대폰을 한 손에 든 채 쇼핑하고 있었는데요. 이렇게 작은 매장도 온·오프라인 채널을 함께 활용하면 경험을 훨씬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겉모습은 달라도 결국 본질은 같습니다
우리는 보통 취향이 담긴 큐레이션에서 매력을 느낍니다.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추천하느냐이지, 반드시 어떤 형식으로 보여주느냐는 아니니까요. 정갈한 진열이나 세련된 연출도 좋지만, 형식보다 중요한 건 결국 그 안에 담긴 기준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대기물은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이게 무슨 큐레이션이지?” 싶은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 뒤에는 오랜 시간 쌓아온 경력과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접시 선정을 할 때 나는 접시를 아무거나 선정 안 해요. 아무거나 막 갖다 놓지 않아요.”
특히 박병수 대표가 자신 있게 던진 이 말을 듣자마자, 모든 의문이 한 번에 풀리더라고요. 우리는 미처 몰랐지만, 4만 가지가 넘는 그릇 하나하나에 이런 고민이 담겨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전달 방식이 조금 투박해 보이더라도, 결국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거죠.
더욱이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치밀한 계산과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손님들이 몰리고, 좋은 후기가 쌓이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큐레이션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될 때, 현대기물&박그릇 매장을 한번 방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겉보기엔 조금 어수선해 보여도, 그 안에서 좋은 큐레이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꽤 많은 깨달음을 얻어가실 수 있으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