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더브랜드] 좋은 명란의 기준, '덕화명란' <1>

2026.01.16

우리나라가 명란의 원조라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멘타이코'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익숙한 명란은 원래 한반도만의 음식이었습니다. 사라진 명란을 부활시킨 명장 일가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어부들 날마다 잡아온 명태어
산과 같이 쌓여서 셀 수 없네

- 최창대 『수성가』(1691)

조선시대 명태는 '국민 생선'이었습니다. 1652년(효종 3) 『승정원일기』에는 명태알이 진상품으로 올라왔다고 적혀 있어요. 명태와 명란에 대한 세계 최초의 기록입니다. 명란은 왕실은 물론 일반 백성들도 즐겨 먹었습니다. 18세기 나온 농서 『증보산림경제』는 명태를 '탕, 구이, 젓갈용으로 안 되는 것이 없는…맛 좋은 물고기'라고 소개해요. 명태의 황금어장이던 함경도 연안은 겨울철 잡은 명태가 수북이 쌓였습니다.

0 정호기
1917년 함경남도 신포항. 오른쪽 덕장에 걸고 바닥에 쌓아둔 것이 모두 명태다. (『정호기(征虎記)』 수록 삽화,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국민 반찬, 명란이 산업화된 건 1930년대입니다. 함경도 명태가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어요. 제국 일본은 명란에 매료됩니다.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나고 자란 카와하라 도시오는 어릴 적 초량시장에서 먹은 명란젓의 맛을 잊을 수 없었어요. 해방 후, 후쿠오카에 정착해 일본식 명란젓을 만들어 팝니다. 이 카라시멘타이코*가 큰 인기를 끌며 일본에서 대규모 명란 산업이 발전해요. 그 사이 한반도는 전쟁과 분단으로 명란이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직역하면 '매운 양념 명란'이란 뜻으로, 일본에서 명란을 통칭하는 말

명란 없는 명란 산지, 부산

2008년, 우리 땅에서 명태 어장이 사라집니다. 전쟁과 분단, 남북 간의 경쟁적인 남획으로 명태 어획량이 공식적으로 '0'을 기록해요. 역설적으로 이때 부산이 명란 유통의 거점지로 발전합니다. 명태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은 러시아지만, 이곳의 수산 유통 인프라가 부족해 수확량이 그대로 배에 실려 부산으로 내려왔어요. 지금도 매년 3~5월이면 전 세계 바이어들이 부산 감천항으로 모이는 이유입니다.

이런 환경 덕에 2011년, 부산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명란 ‘명장’이 나옵니다. 덕화명란의 창업주 故장석준 명장이에요. 대한민국 명장은 국가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정하는 한 분야의 최고 기술인입니다. 장석준 명장은 명란젓 가공 기술로 수산제조 분야에서 유일하게 명장에 올랐어요. 일본식 명란이 널리 퍼진 시장에서 한국 명란의 전통을 복원하고 품질을 높인 업적을 인정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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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수 덕화푸드 대표와 창업주 故장석준 명장

"故장석준 회장님은 수산 가공 분야의 1세대세요. 1970-80년대 한국 수산업의 한 축이었던 삼호물산에서 일하며 1977년부터 명란젓을 만드셨죠. 부도 난 삼호물산의 생산라인을 인수해 시작한 게 지금의 덕화명란입니다."
- 장종수 덕화푸드 대표

명장은 평생 쌓아 온 기술로 명란의 기준을 바꿨습니다. 재래식 명란은 원물보다 양념 맛이 강한 반찬이었어요. 명장은 최상의 명태알을 공수해 저염 명란을 만들었습니다. 맑은 청주를 넣어 숙성해 비린내를 제거하고 염도를 4%로 낮춰 명란 고유의 맛을 살렸어요. 일본과 교류하며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명란을 개발해 수출도 시작했습니다. 한일 양국의 기술이 만난 덕화명란은 일본 세븐일레븐 기업에 PB 상품을 독점 공급해요. 장석준 선대 회장이 명장의 칭호를 받은 것도 이 시기입니다.

이듬해, 뜻밖의 나비 효과를 맞습니다. 일본 아베 내각이 출범해 시장에 돈을 푸는 아베노믹스가 시작돼요. 엔화 가치가 급락하며 명란이 제 값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집니다. 2015년, 덕화명란은 결국 일본 수출을 중단해요. 명장은 사실 이런 미래를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2006년 합류한 아들, 장종수 대표에게 국내 시장을 알아보라고 했었죠. 하지만 당시 장종수 대표가 본 한국의 명란 시장은 폐허에 가까웠습니다.

"그때 명란은 코다리를 만들 때 빼낸 알로 만든 것들이었어요. 부산물로 만들다 보니 신선도가 떨어지고 보존료를 많이 넣었죠. 싸고 유통기한은 길었지만, 맛이 없었습니다. 맛이 없으니 사람들이 더 안 먹고 그런 악순환이었죠."
- 장종수 대표

좋은 명란이 전무했던 시절, 장종수 대표는 발로 뛰었습니다. 처음 뚫은 곳은 수도권의 한 백화점이었어요. 식품관에 팝업 매대를 냈는데, 하루 만에 젓갈 코너 전체 매출을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이때 가능성을 보고 하나씩 판매처를 늘려 나가요.

상품 너머의 가치를 고민하다

덕화명란은 2010년, 기업 부설연구소를 설립합니다. 전통 명란을 연구해 복원하자는 명장의 뜻에 의해서였죠. 그러나 2018년, 故장석준 명장이 지병으로 별세합니다. 장종수 대표는 역사 연구를 더는 늦추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역의 연구자, 음식문헌학자들과 함께 명란에 대한 기록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만드는 상품의 기원과 뿌리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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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수 대표의 사무실. 명란에 대한 책과 자료들이 빼곡하다.

“명태 어장이 한반도부터 일본, 러시아, 미국 서부 지역까지 걸쳐져 있는데요, 이 영역의 수십개 해양 공동체 중 명란을 먹은 건 한반도 뿐이에요. 신기하지 않나요? 북어를 만들 수 있는 기후 조건인 게 가장 컸던 것 같고요. 뭐든 저장하는 젓갈 문화도 발달해 명란젓이 나온 것 같아요. 이런 문화가 전쟁을 겪으며 끊겨 버린 거죠.”
- 장종수 대표 

2016년, 한 방송에서 아보카도 명란젓이 화제가 되며 명란 매출이 훅 뜁니다. 이듬해 덕화명란은 컬리에 입점해요. 장종수 대표는 컬리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눈여겨 봤다고 합니다. 상품위원회를 통과해야 상품을 출시할 수 있는 게 독특했고, 저염 명란 유통에 필수적인 콜드체인 시스템을 갖춘 것도 큰 장점이었습니다.

현재 컬리에서 판매하는 덕화명란 상품은 총 15가지. 그중 가장 매출이 높은 건 ‘KF365 명인 명란’입니다. 덕화명란이 유일하게 자사 이름을 떼고 PB 상품으로 공급하는 상품이에요. 좋은 명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수산팀 김명수 MD의 제안에 의기투합했습니다. PB 상품의 물량이 많았기에 비용과 가격을 낮추는 ‘윈윈’이 가능했어요. ‘명인 명란’을 선두로 덕화명란은 현재 컬리에서만 연간 20억 원이 넘는 매출을 내고 있습니다. 외부 온라인 채널 중 가장 많은 수익이 컬리에서 나와요.

PB
Img (250528 보도자료)msc korea awards
제4회 MSC 코리아 어워즈를 수상한 (정중앙) 덕화푸드 정유진 브랜드팀 과장 (오른쪽 두번째) 컬리 서귀생 상품마케팅 본부장

덕화명란과 컬리는 지속가능한 어업을 지원하는 동반자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5월, MSC* 코리아 어워즈에서 덕화명란은 4년 연속 ‘올해의 제품상’을, 컬리는 이커머스 기업 중 최초로 ‘올해의 리테일러상’을 수상했어요. MSC는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는 지속가능한 어업을 통해 생산된 수산물에만 MSC 에코라벨을 부여합니다. MSC 코리아 어워즈는 매년 국내에서 이런 수산물 유통과 소비에 기여한 브랜드를 부문별로 선정해요. 덕화명란에서 만드는 모든 상품은 100% MSC 인증을 받은 명란 원료만 사용합니다. 컬리는 국내 유통사 중 가장 많은 MSC 인증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요.

*MSC(Marine Stewardship Council, 해양관리협의회): 지속가능한 어업의 표준을 정하는 글로벌 비영리 기구

✨ 2편 '조선 명란의 복원, 덕화명란'에서 계속됩니다.

밑더브랜드(Meet the Brand)는 브랜드를 만든 사람에 집중합니다. 그만의 철학과 삶 속으로 초대할게요.

작성자 이미지

박성주

컬리에 깃든 이야기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