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그림 편지는 누구보다 계절을 즐기는 화가와 요리사의 편지를 전합니다. 계절이 담긴 그림 레시피를 일상에 참고해 보세요.
언니에게
장마가 끝난 여름의 한복판이야. 비를 머금고 무성하게 자라던 풀도, 한참 몰입하던 그림도 주춤하게 되는 더위 속에서 언니가 건네준 작년 이맘때의 복숭아가 떠올랐어. 더위에 지쳐 돌아와 베어 문 복숭아 한 알이 어찌나 달던지. 그렇게 진하고 과즙이 가득한 복숭아는 처음이었어. 허겁지겁 복숭아를 그 자리에서 먹어 치우니 더위가 한결 가시는 느낌이 들었어. 그 순간 그해 여름도 조금씩 지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
그날의 달콤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여름에 만난 복숭아를 그려봤어. 여전히 무더운 날이지만, 제철의 재료들이 계절의 피로를 잊게 해주기도 하니까. 복숭아로 만드는 언니의 요리도 기대된다.
여름의 한가운데서, 2026년 8월 미나가

🍑 복숭아 판자넬라 (이탈리아의 여름 샐러드)
재료
- 오도로끼 복숭아 1개
- 방울토마토 8알
- 치아바타 또는 사워도우 2장
- 생모차렐라 적당량
- 바질 한 줌
- 적양파 1/4개
-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3큰술
- 화이트와인 식초 1큰술
- 꿀 1작은술
- 소금
- 후추

만드는 순서
1️⃣ 빵은 한 입 크기로 찢어 올리브오일을 살짝 두른 뒤 팬에서 노릇하게 굽습니다.
2️⃣ 복숭아는 껍질째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방울토마토는 반으로 자릅니다.
3️⃣ 적양파는 얇게 썰어 찬물에 10분 정도 담갔다 물기를 뺍니다.
4️⃣ 큰 볼에 올리브오일, 식초, 꿀, 소금, 후추를 넣어 드레싱을 만듭니다.
5️⃣ 토마토를 먼저 넣어 살짝 버무린 뒤 복숭아, 빵, 적양파를 넣습니다.
6️⃣ 마지막에 바질과 모차렐라를 손으로 찢어 넣고 가볍게 섞습니다.
7️⃣ 10분 정도 그대로 두어 빵에 복숭아 과즙과 드레싱이 촉촉하게 스며든 뒤 먹으면 풍미가 더욱
깊어집니다.
8️⃣ 먹기 직전 올리브오일을 한 번 더 둘러 마무리합니다.
💡Tip
- 딱딱하게 마른 빵일수록 과즙과 드레싱을 잘 흡수해 판자넬라 특유의 겉바속촉이 살아나요.
- 생모차렐라 대신 페타 치즈나 리코타 치즈를 툭툭 얹어 고소함과 짭조름한 맛을 더해주어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 프로슈토나 하몽을 한두장 찢어 올리면 단짠의 조화가 좋은 근사한 와인 안주 완성!
미나에게
무더운 날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올해는 이 여름이 조금 다정하게 느껴져. 푹푹 찌는 밤 더위 속에서 너와 매미 유충을 찾아 서성이고, 어린 고양이를 찾아 골목을 누비던 일들을 떠올리면, 그 뜨거움마저 어린 날 기다리던 설레는 방학처럼 남아 있거든. 올해는 유난히 과일들의 단맛이 깊어. 부엌 창가에 앉아 잘 익은 복숭아를 하나 깎아 먹으면, 손끝에 묻어 나는 과즙과 달콤한 향 속에서 여름을 통째로 삼키는 기분이 든다.
이번엔 네 편지를 읽고 복숭아로 판자넬라를 만들었어. 어제 먹다 남은 빵을 큼직하게 썰어 바삭하게 굽고, 잘 익은 복숭아와 단단한 토마토, 향긋한 바질과 치즈를 한데 담아 올리브 오일에 툭툭 버무려내는 음식이야. 서로 다른 맛들이 한 접시 안에서 섞여도 복숭아 특유의 붉고 달콤한 향은 옅어지지 않고, 오히려 이 계절의 색을 더 선명하게 채워주더라고. 가볍지만 든든해서 불 앞에 서기 힘든 여름에 자꾸 생각나는 한 끼가 되었어.
네가 보내준 복숭아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오늘 만들어 낸 내 접시 곁에 가져다 두었어. 여전히 덥지만, 맛있는 과일과 너의 그림을 곁에 두고 또 한 계절을 무사히 통과하고 있네.
선풍기 앞에서, 2026년 8월 지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