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음식’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흔히 화려한 곳에서 격식 차리고 먹는 걸 생각하곤 하죠.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 ‘톰볼라’의 음식은 다릅니다. 따뜻한 현지 가정집에 초대 받아 먹는 정겨운 요리들이에요. 올해로 23년차, 변함없이 홈메이드 요리를 선사하는 이탈리안 클래식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서곡 : 이탈리아 산골 마을의 음악 선생님
1980년대, 이탈리아의 소도시 피소니아노(Pisoniano). 로마에서 40km 떨어진 작은 마을에 한 한국인 부부가 살았습니다. 음악을 공부한 부부는 마을 주민들의 요청으로 음악 교실을 운영했어요. 문화적으로 결핍된 산골짜기라 인기가 좋았죠. 남편인 성악가 김주환 님은 현지에서 소프라노 마리아 젠틸레에게 사사했습니다. 벨칸토* 성악의 황금기에 활동한 거장에게 직접 배웠어요.
*벨칸토(bel canto) : 오페라 창법 중 하나로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 서정적인 선율과 섬세한 기교가 특징이다.
공동체 의식이 강한 마을 사람들은 유일한 동양인 부부에게 먼저 다가와 주었습니다. 영혼의 친구 같은 가족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냈어요. 현지에서 태어난 둘째, 셋째 아이는 대부와 대모* 이름을 따 마테오(Matteo), 안나(Anna)라는 이름을 갖게 됐죠. 가르치던 학생의 가족이 하는 식당에도 자주 갔습니다. 이름은 ‘라 톰볼라’, 라치오 주 전통 음식을 하는 트라토리아**였어요. 라자냐, 피자, 파스타 같은 보통의 이탈리아 가정식을 잘 하는 곳이었습니다.
*대부/대모 : 가톨릭에서 아이가 세례를 받을 때 정하는 후견인으로, 종교적 역할뿐만 아니라 인생의 멘토와 같은 특별한 관계다.
**트라토리아(trattoria) : 이탈리아어로 작은 식당이란 뜻으로, 정식이나 코스 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보다 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1994년, 김주환 님은 가족과 함께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당시 국내에는 막 이탈리아 음식 열풍이 불었어요. 하지만 막상 유명한 식당에 가 보면 현지에서 본 모습과 달랐습니다. 어느 날 결심했어요. 진짜 이탈리안 식당을 차려야겠다고. 음악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업을 한다고 하니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주위에서 말릴수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친구였던 라 톰볼라의 셰프, 안토넬로에게 연락해 이탈리아 음식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이탈리아로 향했어요.
이 친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김주환 님이 온다고 식당 직원 한 명을 아예 빼 버린 거예요. 말 그대로 접시 닦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주방 허드렛일을 두 달 정도 하니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였어요.
“주말엔 (서버들이) 음식 들고 나갈 때 주방 문을 발로 차고 나가요. 너무 바쁘니까. 그래서 그때 그때 필요한 거, 큰 접시, 작은 접시, 식기류 그런 걸 미리 준비해놨다가 딱딱 넣어줬죠. 그날 영업 끝나고 나니까 전 직원이 나한테 박수를 쳐주는 거예요. 너무 잘 했다고, 덕분에 너무 편했다고. 우리 한국 사람들이 좀 감각이 있잖아요?”
– 톰볼라 김주환 대표
안토넬로는 그제서야 요리를 가르쳐주기 시작했습니다. 식당 직원들이 먹는 사내식부터 시켰죠. 저녁엔 라 톰볼라에서 일하고 낮에는 로마의 요리학교에 다니며 피자 코스를 밟았습니다. 이탈리아 주 정부가 공인하는 피자 장인을 양성하는 교육 과정이죠. 틈틈이 유명 셰프가 여는 요리 클래스도 다니며 기본기를 익혔습니다.
전에 없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톰볼라는 서래마을의 골목 안쪽에 있습니다. 차 한 대만 지나는 작은 길 위, 아담한 건물들 사이에 있어 자칫하면 지나치기 쉬워요. 하지만 김주환 대표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가 그린 건 ‘라 톰볼라’였어요. 이탈리아 가정집에 온 것 같은, 할머니 집 같이 편안하고 소박한 곳이요. 당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청담동, 압구정동에 많았는데 가보면 내 정서랑 안 맞았어요. 사람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달까. 저는 몇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 김주환 대표
우연히 서래마을의 한 건물 설계도를 보고 ‘여기다’ 싶었습니다. 대로변이 아닌 이면도로에서 더 들어가야 하는 깊숙한 곳.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조용한 동네에 걸음 걸음 찾아 가는 곳을 그렸기에 간판도 크게 달지 않았습니다. 내부 인테리어도 정겨운 현지 식당을 생각하며 꾸몄어요. 붉은 벽돌과 나무 질감의 장식들, 따뜻한 노란 톤의 벽지를 썼죠. 벽에는 <로마의 휴일>, <자전거 도둑> 등 대표적인 이탈리아 흑백 영화의 장면들을 액자에 걸었습니다.




2003년 개업한 톰볼라는 모든 게 기존의 이탈리안 식당과 달랐습니다. 조용한 위치에 있어 처음엔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도 없었죠. 지인들을 초대하면 찾기 힘들다며 ‘사람을 왜 이렇게 힘들게 하냐’는 불평도 많이 들었습니다.
“주변 분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음악하는 친구들, 외식업하는 분들이 와서 맨날 이건 아니라고 했죠. 한 미술 전공자 분은 (벽지에) 절대 이 색깔을 쓰면 안 된다는 거예요. 노란색을 쓰면 음식 맛이 없어진다나.”
– 김주환 대표“당시 이탈리안 레스토랑하면 화려하고, 살이 베일 듯한 모던한 분위기였어요. 샹들리에가 반짝반짝 빛나고 그런. 저희는 그런 면에서 전혀 달랐던 거죠.”
– 톰볼라 김안나 영업이사
개업 후 한두 달이 지나자 외국인들이 찾아 오기 시작했습니다. 서래마을은 프랑스 학교를 중심으로 프랑스인들이 사는 마을이 형성돼 있었어요. 언젠가부터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온 프랑스인들이 식당 개시를 했습니다. 주변에서 일하는 이탈리아계 노동자들도 한번 온 뒤 매일같이 점심을 먹으러 왔어요. ‘집 같다’면서요. 반년여가 지나자 힘에 부칠 정도로 손님이 늘었습니다. 유럽에 다녀 온 경험이 있는 사람들 사이 진짜 현지 식당 같다는 입소문이 퍼진 거예요. 특별한 외식을 하려는 가족, 정재계 내로라하는 인사들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어요. ‘여기는 카피(복제)가 불가능한 곳이야’.
음악도 ‘킥’이었습니다. 성악가였던 김주환 대표는 선곡에도 공을 들였어요. 매장 안에는 바로크 음악과 성악곡, 샹송 등 잔잔하면서도 정서적으로 풍부한 음악이 흘렀습니다. 가장 낮은 베이스나 강한 타악기 소리는 줄이고 부드러운 중간 음역대로 공간에 어울리는 음향을 조성했죠. 서울에서 유일하게 바로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란 말에 찾아 온 이들도 많았습니다. 김주환 대표는 평일과 주말, 낮과 밤 등 시간대와 계절별로 어울리는 음악을 일일이 골라 CD로 구웠어요. 요즘 말로 플레이리스트를 짠 거죠. 평일 낮에는 귀에 익숙한 ‘오 솔레 미오’나 ‘볼라레’ 같은 대중적인 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서래마을 상권은 톰볼라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톰볼라를 중심으로 독창적인 가게들이 생겨나며 마을의 고유한 특색을 만들었죠. 하지만 2010년 전후로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줄어듭니다. 김주환 대표는 뭔가 더 필요하다는 직감이 들었어요. 식당도 하나의 기업인데, 기업으로서 체질이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었죠. 이런 조바심은 컬리와 함께 하는 제2의 판로 개척으로 이어집니다.
✨ 2편 ‘세대를 넘어 공명하는 이탈리안 요리, 톰볼라’에서 계속됩니다.
밑더브랜드(Meet the Brand)는 브랜드를 만든 사람에 집중합니다. 그만의 철학과 삶으로 초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