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더브랜드] 당신의 곁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날 ‘농부의 꽃’

2025.04.18

어제 장 본 물건들이 도착했어요. 택배 상자들 맨 위, 늘씬한 박스가 하나 있습니다. 상자 겉면에 이렇게 쓰여 있네요.
‘당신의 곁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날 농부의 꽃’
상자를 열어 겹겹이 쌓인 완충재를 하나씩 풀면 가지런히 꽂힌 꽃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꽃망울이 아직 열리지 않아 푸릇푸릇한 튤립 다섯 송이. 우유, 달걀과 함께 꽃 한 단을 살 수 있는 것, 누구의 생각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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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꽃을 재배하는 임동진 생산자

강원도 춘천의 한 농장.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임동진 님은 33종의 튤립을 기릅니다. 원예학을 전공한 그는 처음에 채소 농사를 지었어요. 오이와 토마토는 춘천의 기후 환경에서 잘 자랐지만, 돈이 되지 않았습니다. 물량이 쏟아지는 시기에 다같이 출하해 값을 싸게 받을 수밖에 없었거든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속 가능한 작물을 찾았습니다. 그때 눈에 띈 게 꽃 농가였어요. 화훼 수출이 늘어나고 있었고, 특히 백합이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2004년 꽃 농사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공들인 꽃이 도매시장에서 제값을 못 받거나 유찰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수출도 대부분 일본에 한정돼 있었죠.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소비자와 직거래하자.’

“자체 쇼핑몰을 만들고 유명한 온라인 플랫폼에도 입점했어요. 그런데 관리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모든 걸 제가 해야 했거든요. 꽃을 재배하는 도중 계속 주문을 확인하고, 농장 일 끝나고 밤에 포장하고, 다음날 택배를 부치고, 보내고 나서 소비자 대응도 하고… 이런 걸 다 누가 해주고 저는 꽃의 품질에만 집중하고 싶었어요. 당시 온라인 주문량이 전체의 1%도 안 돼서 더 힘들었죠.” 
– 임동진 생산자

수출과 내수 모두 녹록지 않던 상황.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꽃을 소비하는 문화였습니다. 사람들은 특별한 날에만 꽃을 샀어요. 대개 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였죠. 꽃의 소비 자체가 적다 보니 화훼 농가의 성장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온라인에서 꽃을 사는 건 더 흔치 않았죠. 재배 농가로부터 직접 사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습니다.

나를 위한 덜 핀 꽃

2019년 가을, 임동진 생산자는 컬리와 만났습니다. 강원도의 농산물을 컬리에 유통해온 기업, 록야의 권민수 대표와 함께였죠. 컬리의 샛별배송은 내일 아침까지 신선한 식품을 가져다주는 데 특화돼 있었습니다. 컬리는 꽃이 채소나 과일과 같다고 봤어요.

“꽃도 농산물이에요.
신선도가 중요하고 배송 중 유실되는 부분이 많아 유통 마진이 높죠.
그런데 도·소매를 거치면 고객들은 수확 후 최소 2~3일은 지나야 상품을 살 수 있습니다.
컬리가 농산물을 신선하게 전달해드린 것처럼, 꽃도 상시 판매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 김신희 MD · 컬리 상품본부

꽃마다 제철이 있습니다. 튤립은 초겨울에 피기 시작해 5월 말까지 볼 수 있죠. 그래서 임동진 생산자는 ‘덜 핀 꽃을 팔자’고 제안했습니다.

“온라인에서 꽃을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까 상상해봤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보다 집이나 사무실의 꽃병에 꽂아놓고 즐기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았어요.
이런 분들은 오래오래 꽃을 보고 싶어 할 거라고 봤고요.
그래서 꽃봉오리가 어릴 때 따서 긴 시간 감상할 수 있게 했어요.
활력이 좋을 때 꺾고 이후 꽃을 피워서 훨씬 오래 유지되는 거죠.” 
– 임동진 생산자

원래 꽃을 위탁시장에 팔거나 화훼공판장을 통해 경매로 보낼 땐 한번 꽃망울을 틔웠다가 오므리게 합니다. 꽃봉오리를 더 키우기 위해서죠. 외관을 크게 해 꽃을 풍성하게 만드는 겁니다. 하지만 ‘농부의 꽃’은 고객이 꽃을 받은 이후에도 최대한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길 바랐어요.

“일상 속에서 꽃을 즐기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오래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중요했어요.
소비자가 꽃을 받은 순간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공간에서 꽃을 즐기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 록야 권민수 대표

2020년 2월, 임동진 생산자의 튤립을 포함한 8종의 ‘농부의 꽃’이 컬리에 등장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한 꽃을 제안했어요. 특별한 날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닌 나의 공간을 아름답게 바꿔주는 꽃이요. 컬리는 장을 보며 꽃도 함께 살 수 있다면 일상적인 꽃 소비가 가능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상품 기획도 다르게 접근했어요. 기존의 꽃다발이나 꽃바구니가 아닌 5~6송이를 한 단으로 단출하게 묶었습니다. 꽃 본연의 싱싱함을 내세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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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보다 꽃이 더 많이 팔린다”

임동진 생산자는 농부의 꽃 출시 첫날, 튤립 1천 상자를 준비했습니다. 2시간 만에 다 팔렸어요. 튤립 다섯 송이가 든 한 상자는 (당시) 1만 2천 원. 꽃집보다 가격이 있었지만 신선한 꽃을 다음날 새벽 받을 수 있는 점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코로나19의 확산과 홈 인테리어 열풍이 맞물려 이틀에 1천 상자가량 꾸준히 팔렸어요. 쌀보다 꽃이 더 많이 팔렸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꽃이 오래 가면 사람들이 꽃을 덜 사게 되지 않을까요? 임동진 생산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소비자들이 꽃을 오래 보고 만족하면 2주 후에라도 또 살 수 있지만, 금방 시들어 버리면 아예 재구매하지 않을 거라고요. 실제로 오래 가는 농부의 꽃에 대한 긍정적인 후기가 늘었고, 첫 판매 이후 열흘가량 지나 재주문을 한 소비자들이 나왔습니다.

“꽃 시즌이 정해져 있잖아요.
하지만 꽃을 상시 판매한다면 농가도 결혼이나 졸업, 입학 대목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죠.
그래서 장기적으로 생산량을 계획하는 게 가능해지면 시장 안정성도 높아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 
– 김신희 MD

“경매 시장은 가격이 들쭉날쭉해요.
온라인이나 직거래 시장은 꽃만 잘 키우면 사실상 고정 가격에 팔 수 있어서 판로만 탄탄하면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죠.” 
– 임동진 생산자

농부의 꽃이 성공한 후, 임동진 생산자는 주변 농가의 꽃도 함께 납품하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에 농작물 소득이 없던 마을 주민들에게 새로운 수입원이 생겼죠. 임동진 생산자는 도매로 출하하는 물량의 25%까지 온라인에서 소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25년 1월 현재, 임동진 생산자는 튤립을 포함해 총 26개의 농부의 꽃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화원에서 우리 집 앞까지, 100% 풀콜드체인

농부의 꽃은 처음부터 끝까지 냉장 유통이 가능한 풀콜드체인*으로 가능했습니다. 먼저 그 전에 꽃이 유통돼온 과정을 볼까요?

*풀 콜드체인: 냉장, 냉동, 상온 상품을 분리해 포장한 후 상품별로 최적의 온도를 유지하며 산지에서 문 앞까지 배송하는 컬리의 물류 시스템

농가에서 꽃을 수확하면 바로 물올림을 해줍니다. 꽃은 수확하는 순간 생명을 잃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꺾은 꽃의 줄기를 수조 안에 넣고 줄기와 잎, 꽃봉오리까지 물을 올려줍니다. 줄기가 연한 튤립은 최소 5시간 내외, 줄기 아랫부분이 목질화*되는 국화류는 이틀까지 물올림을 해요. 하지만 이 물올림은 박스 포장 전까지만 가능합니다. 꽃은 대형 다발로 박스 포장돼 대부분 마른 상태로 보내집니다(건식 유통). 서울 양재동 화훼공판장에서 꺾은 꽃의 경매 시간은 자정. 경매 당일 포장해도 경매 후 중간 도매상을 거치면 다음날 오후에야 동네 꽃집에 도착합니다. 그때 다시 물올림이 가능해서 꽃은 만 하루 이상 말라가죠. 신선도가 떨어지고 소비자가 꽃을 산 후에 금방 시들 수밖에 없습니다.

*목질화: 식물의 세포가 서로 달라붙어 단단해지는 것

농부의 꽃은 이 과정을 확 줄였어요. 꽃이 물올림을 마치면 농가에서 대여섯 송이로 소분해 플로럴 폼*에 꽂아 박스에 포장합니다. 이후 냉장 탑차에 실어 오전 10~11시경 컬리의 냉장 창고로 들어가요. 입고된 꽃은 다시 냉장 차량에 실려 다음날 새벽 소비자의 집 앞에 놓입니다. 주문하면 물올림이 끝난 꽃을 최소 24시간 이내에 받아볼 수 있죠.

*플로럴 폼(floral foam): 꽃을 고정시키는 물에 적신 흡수성 스폰지. ‘오아시스’라는 플로럴 폼 생산사의 이름으로 널리 불린다.

…..<이미지> 유통 과정 비교 – 제작중……..

이렇게 꽃을 수확한 직후부터 고객이 받을 때까지 수분을 공급하며 유통하는 걸 습식 유통이라고 합니다. 습식 유통은 꽃의 수명을 크게 늘릴 수 있죠. 소비자는 꽃망울을 틔우기 전의 꽃을 받아 생화가 피고 지는 과정을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고객들께서 갓 수확한 꽃의 생생한 아름다움을 경험해 보셨으면 했어요.
아침에 수확한 꽃을 다음날 새벽 배송할 수 있으니, 최소 24시간에서 최대 48시간 내에 전할 수 있죠.” 
– 임동진 생산자

포장도 신선함을 살리기 위해 고민했어요. 화려한 포장지는 생략하고 묶음별로 비닐과 종이로 꼼꼼히 싼 후 완충재를 둘러 처음 그대로의 꽃을 받을 수 있게 했죠. 담당 MD가 상자를 던져보기도 하고 열악한 상황을 가정한 여러 테스트를 거쳐 지금의 종이상자에 선보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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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꽃 속에서 나의 취향 찾기

2025년 1월 현재, 컬리에서 판매하는 농부의 꽃은 여든 개가 넘습니다. 임동진 생산자는 튤립 16종을 포함해 백합, 프리지아, 스토크 등 다양한 농부의 꽃을 제공해요.

“튤립하면 노란색, 빨간색 정도로 떠올리실 텐데요. 사실 튤립은 품종이 1천여 종에 이르는 다채로운 꽃이에요.
저희 농장은 그중 33가지 종류의 튤립을 재배하고 있어요. 저마다 매력이 다 달라서 하나도 허투루 키울 수 없죠.” 
– 임동진 생산자

석양을 닮은 다홍빛 튤립, 빨강 노랑이 그라데이션된 다우존스 튤립, 파스텔 핑크톤의 샤베트 튤립 등 형형색색 다채롭습니다. 임동진 생산자는 매년 새로운 품종의 재배를 시도해요. 서정적인 색채로 부케에 많이 쓰이지만 수입만 가능하던 샤베트 튤립을 국내에서 처음 직접 키워냈죠. 화훼 농사를 시작한 초기에 소비자가 선호하는 곧게 뻗은 형태의 백합 품종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소비자를 분석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꽃을 선보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 새로운 수요가 나오고 시장도 더 커지지 않을까요?” 
– 임동진 생산자

이전에 꽃을 살 땐 꽃집에 가서 무엇을 위한 꽃인지, 얼마 정도 생각하는지만 이야기했습니다. 꽃의 종류나 품종은 플로리스트에게 맡겼죠. 하지만 농부의 꽃은 우리에게 선택권을 넘깁니다. 장미, 튤립, 백합 같이 대중적인 상품부터 왁스플라워, 라넌큘러스, 디스버드 등 다양한 매력의 꽃도 두루 소개해요. ‘꽃머리가 무거워 잘 휘어져요’, ‘백합은 반려동물 특히 고양이에게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등의 세세한 설명으로 나의 공간에 맞는 꽃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죠. 꽃의 수명을 늘리도록 영양분을 주는 플라워 푸드도 동봉합니다. 소비자는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꽃을 선택하고 관리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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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꽃을 구매한 고객 후기 중

코끝에 겨울이 오면 튤립 철도 돌아옵니다. 튤립이 어느 정도 자라 봉오리를 맺으면 햇빛 관리가 더 중요해요. 온도에 예민한 튤립은 밝고 따뜻한 데서 활짝 피고, 서늘한 곳에선 얼굴을 감춥니다. 임동진 생산자는 하우스 외벽에 차양막을 치고 실내가 따뜻하게 난방을 합니다. 빛과 온도, 습도를 세밀하게 조정해 품질 좋은 꽃들만 선별해요. 며칠 내 고객의 집 앞에 놓일 싱그러운 꽃 한 단. 농부의 꽃은 오늘도 당신의 일상에 함께 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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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사치품처럼 즐기는 것보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누리셨으면 합니다.
매일 아침 싱싱하게 배송된 꽃이, 바쁜 일상에도 향기를 불어 넣어주면 좋겠어요.” 
– 임동진 생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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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주

컬리 콘텐츠 매니저.
맛있는 거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