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과학이다! 궤도의 리얼 궤소리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과학적으로 풀어 드립니다.
📝 세 줄 요약
- 매운맛은 과학이다
- 고통을 쾌락으로 만드는 뇌의 메/커/니/즘
- ??? : 다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매운 거 좋아해?”
요즘 자주 묻는 말이다. 매운맛의 음식들이 넘쳐 나는 시기에 세대를 불문하고 퍼지는 매운맛 열풍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사회 현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매운맛에 대한 내성은 유전적으로 특정 감각에 대한 민감도에 따라 정해진다. 이로써 누군가에게 ‘맵부심’이라는 자부심을 실어주거나, 반대로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해 유행을 거스를 수밖에 없는 이들을 ‘맵찔이’로 비하하기도 한다.
맛이 아닌 통증이나 여전히 ‘매운맛’이라고 불리는 이 짜릿한 고통의 미학은 어떻게 우리와 이토록 가까워진 걸까.

모두 다른 매운맛의 과학
사실 매운맛의 세계는 불닭볶음면이나 마라탕보다 훨씬 다채롭다. 우리가 맵다고 느끼는 통증 이상의 특별한 감각은 사실 한 종류가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화학물질이 우리 몸의 각기 다른 신경 수용체를 자극해서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경험이기 때문이다.
우선 불닭과 떡볶이로 유명한 고추부터 살펴보면, 원인이 되는 물질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캡사이신’이다. 가장 기본적이며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캡사이신은 통증과 관련된 수용체를 자극하는데, 이 수용체가 뜨거움을 감지하는 센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캡사이신을 먹으면 뇌가 입안에 불이 난 것처럼 착각해서 강렬한 열감을 통증 신호와 함께 전달하니 타는 듯한 고통을 동반한 매운맛을 경험하게 된다. 맵다고 물을 먹어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지용성이기 때문인데, 통증이 입안에 오래 남는 캡사이신의 매운맛을 해소하는 방법은 유지방이 들어있는 우유나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이다. 부드러운 밥알로 입안을 닦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유행의 대표주자, 마라탕은 저릴 마(痲)와 매울 랄(辣)이 합쳐진 ‘마랄’을 중국식으로 읽어 ‘마라’가 됐다. 마라를 먹으면 통증이라기보다 감각이 마비되는 듯한 독특한 느낌을 주는데, 바로 ‘산쇼올’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이건 마취제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동시에 혀의 진동을 감지하는 기계적인 수용체를 건드리는데, 이렇게 되면 뇌는 매우 빠르게 진동하는 촉각 자극이 지속되는 것처럼 느껴서 마치 정전기가 오르는 듯한 저릿하고 얼얼한 경험을 하게 된다.
코가 찡하고 눈물이 핑 도는 고추냉이는 ‘시니그린’이라는 성분이 산소와 반응해서 만들어내는 ‘이소티오시안산 알릴’이라는 매우 가벼운 기체 때문이다. 다른 성분과 달리 입에 들어가자마자 빠르게 휘발되며 입천장을 지나 비어있는 코 뒤쪽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이 기체는 코의 통증 수용체를 직접 자극하는 매운 가스다. 다행히 기체라 금방 날아가기 때문에 매운 느낌이 짧고 강렬하게 왔다가 바로 사라지지만, 그래도 처음 먹어보면 꽤나 신선한 충격을 주는 매운맛이다.
🔎 매운맛의 종류
- 고추 : 원인물질 ‘캡사이신’ ➡️ 뜨거움 센서 자극 ➡️ 입에 불이 난 듯한 통증
- 마라 : ‘산쇼올’ 성분 ➡️ 혀의 진동 감지하는 촉각 자극 ➡️ 저릿, 얼얼한 감각
- 고추냉이 : ‘시니그린’ 성분 + ‘이소티오시안산 알릴’ 기체 ➡️ 매운 가스가 코를 자극하고 휘발
이처럼 매운맛은 단일한 감각이 아니라 어떤 신경 수용체를 어떻게 속이고 자극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뇌과학적 착각에 가깝다. 중요한 건 과거의 매운맛이 단맛이나 신맛을 동반한 가벼운 매콤함이었다면, 지금의 추세는 아예 고통 그 자체를 즐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매운맛의 고통을 즐기는 이유
그렇다면 왜 우리는 서로 다른 종류의 고통을 기꺼이 찾아 나서는 것일까? 놀랍게도 뇌는 캡사이신이나 산쇼올이 유발한 통증 신호를 실제 위협으로 인식하고 이에 맞서기 위한 경보 시스템을 가동한다. 이 과정에서 비상시 고통을 줄여주고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천연 진통제 ‘엔도르핀’이 분출되는데, 호르몬의 한 종류인 엔도르핀은 인체가 엄청난 위협 앞에서 자체 생산하는 매우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로 효과가 모르핀의 800배 정도 된다. 즉, 매운맛의 고통이 엔도르핀 분비라는 거부할 수 없는 쾌락의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은 우리에게 공포와 스트레스를 선사하지만, 꼭대기부터 빠르게 떨어지는 롤러코스터에서 우리의 공포는 오히려 짜릿한 쾌감으로 바뀐다. 지극히 안전하게 즐기는 위험처럼 통제가 가능한 고통으로부터 얻는 쾌락은 중독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특히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매운맛은 즉각적인 해소를 제공하는 합법적이고 저렴한 해법으로 작동한다.
이로써 우리는 왜 소중한 돈을 내고 고통을 사려고 매운맛을 찾아다니는지 이해가 된다. 이미 우리는 뇌가 설계한 대로 매운맛이 주는 쾌락의 함정에 빠져버린 것이다. 심지어 이제 ‘챌린지’나 ‘먹방’을 통해 단순히 먹기를 넘어 수행과 전시를 통한 고통을 인증한다. 특히 10대들이 소셜미디어에서 매운 음식을 먹고 고통을 참아내는 모습을 공유하는 행위는 자신이 강하고 트렌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종의 사회적 배지가 된다. 여기에 ‘좋아요’나 ‘공유’를 통해 도파민까지 분비된다면 매운맛 자체의 쾌감과 소셜미디어의 보상이 이중으로 연결되어 중독을 강화한다.
🔎 매운맛의 과학
매운맛 ➡️ 뇌가 통증을 위협으로 인식 ➡️ 천연 진통제 ‘엔도르핀’ 분출 ➡️ 마약 같은 쾌락 😇
우리가 매운맛에 끌리는 건 고통에 대항하기 위해 설계된 뇌의 본능적인 메커니즘 덕분이다. 단순한 미각 경험을 넘어 우리 뇌가 감독이 되어 직접 연출하는 한 편의 완성도 높은 드라마인 셈이다. 물론 과도하게 매운 음식만 섭취한다면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기거나 몸의 균형을 해칠 수 있다. 하지만 맛이 아닌 통증을 안전하게 즐기는 놀이로 인식하는 새로운 시대에 매운맛의 과학을 충분히 이해하고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인다면, 이러한 고통의 미학을 더욱 지혜롭고 행복하게 탐닉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