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입사 전부터 컬리의 찐팬이었어요. 컬리가 상품과 고객을 대하는 태도를 이미 잘 알고 있었죠. 패션이 처음이라도 잘 될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이유에요.”
이지연 컬리 패션그룹장
📍들어가기 전에
“컬리에서 옷도 살 수 있어?”라고 묻는 사람이 여전히 많지만, 패션 카테고리는 컬리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카테고리 중 하나입니다. 2024년 컬리 패션 카테고리는 전년 대비 약 240% 성장했어요.
이지연 패션그룹장은 25년간 패션 업계를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내로라하는 패션 전문 기업에서 다수의 론칭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패션 전문가죠. 그녀가 장보기 성격이 강한 컬리에서 발견한 진주는 뭐였을까요.
치열한 패션 시장에서 컬리 패션의 한 끗을 물었습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고집스럽게 찾으려 노력했다는 컬리다운 패션, 이제 어느 정도 답을 찾았을까요?
패션은 처음이지만 무기는 있었다
Q. 컬리 패션 성장세가 무섭습니다. 지난 6월에는 패션 첫 대규모 프로모션인 ‘패션컬리페스타’도 열었고요. 패션 카테고리가 빠르게 성장하는 가장 큰 이유를 뭐라고 보시나요.
브랜드 큐레이션이요. 컬리 고객이 열광할 만한 브랜드 구성을 빠르게 찾아서 선보인 게 컸던 것 같아요. 초기 패션 서비스는 임팩트 있는 브랜드가 들어온 전과 후, 성장세가 확실히 달라져요.
Q. 보통 인기 패션 브랜드는 입점까지 어느 정도 걸리나요.
오르(ORR)라는 브랜드는 직전 회사에서 알게 된 브랜드예요. 그때부터 함께하고 싶은 브랜드였고, 컬리 와서 결국 입점을 성사했으니 입점까지 한 3년 걸린 셈이죠. 헬렌카민스키는 거의 1년 정도 공을 들였고요.
Q. 이미 팬덤이 공고한 패션 브랜드가 패션으로는 신생인 컬리에 입점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작년에 컬리에 합류해서 컬리가 가진 강점을 훑어봤어요. 패션 브랜드가 좋아할 만한 포인트들이 있더라고요. 일단 ‘뷰티컬리’라는 성공 사례가 있었어요. 럭셔리 브랜드가 컬리를 선택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뷰티 고객 포트폴리오에 답이 있었죠. 고소득 여성 고객과 밀레니얼 고객, 그리고 서울에 거주하는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이런 고객 포트폴리오는 패션 브랜드에서 정말 갖고 싶어 하는 고객 풀(pool)이에요.
컬리 브랜드 이미지도 경쟁력이 있었어요.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브랜드 이미지 조사 결과를 보니, ‘고급스럽다’, ‘트렌디하다’, ‘세련됐다’라는 평가가 많더라고요. 컬리의 고객 성향과 고객이 느끼는 컬리에 대한 이미지, 패션과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어요. 비록 패션 분야에서는 신생일지 몰라도 컬리가 가진 가능성을 브랜드에 중점적으로 어필했죠.
Q. 컬리는 온라인 플랫폼이라 오프라인 매장이 있는 패션 플랫폼 대비 ‘컬리 패션은 이러하다’라고 정체성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듯해요. 고객 경험은 어떤 식으로 설계하시나요.
초기 브랜드나 서비스는 정체성을 잡는 게 정말 중요해요. 초반에 정체성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외부에서는 컬리가 어떤 패션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를 수 있거든요. 최근에야 ‘컬리에서 라이브 해보고 싶다’, ‘입점해 보고 싶다’라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브랜드 수를 마구 늘리기보다는 컬리 고객에게 맞는 브랜드를 정성스럽게 고르고 들여온 덕분인 것 같아요. 다른 플랫폼에는 없는 브랜드를 잘 선정해서 론칭한 경험도 쌓였고요. 컬리 패션의 정체성이 초반보다는 확실히 뚜렷해진 걸 느껴요.
또한 온라인 패션 상품은 입어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라이브 방송을 신경 써서 진행했어요. 패션 라이브는 많게는 한 달에 4회까지도 하는데요. 스타일링 전체를 고려해서 제안하는 편이에요. 저희는 식품도 음식 하나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식경험을 강조해서 플레이팅을 보여주는 식이었잖아요. 패션도 동일해요. 그냥 단품을 파는 게 아니고 전체적인 어울림을 보실 수 있도록 착장 컷을 보여드리죠. 특히 패션 라이브는 브랜드 대표님이 직접 나오시는 경우가 많아요. 브랜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분이 설명하는 상품, 고객들이 흥미롭게 볼 수밖에 없어요.
큐레이션의 출발점, 언제나 고객으로부터
Q. 브랜드 큐레이션에 공을 들이셨다고 했는데요. 패션은 성분을 중요하게 보는 식품, 뷰티와는 또 다른 기준이 있을 것 같아요.
큐레이션은 항상 고객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컬리 패션은 브랜드 중심 큐레이션이 아니라 철저하게 고객 중심 큐레이션을 지향해요. 아무리 잘나가고 트렌디한 패션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컬리 고객에게 맞지 않는다면 컨택하지 않아요.
Q. 컬리 고객의 특징은 어떤가요.
경제력이 있고, 기혼 여성 고객의 경우 가정에서 구매를 거의 결정한다고 봤어요. 좋은 브랜드를 이미 많이 경험하셨을 거라고도 생각했고요. 다른 패션 플랫폼의 객단가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보니 컬리에서는 오히려 단가가 좀 있더라도 고객분들이 생각하셨을 때 ‘이 정도 좋은 품질의 상품이면 지불할 수 있다’라고 느낄 만한 상품 위주로 제안했어요. 그렇다고 패션 상품 모두 비싼 가격대를 제안한 것은 아니지만, 특정 카테고리에서는 프리미엄 상품을 선보였을 때 충분히 구매할 수 있으시리라 생각했던 거예요.
Q. 프리미엄 상품이라고 하면 백화점에서 볼 법한 패션 브랜드를 생각하면 될까요. 뷰티컬리와 동일한 초기 전략*을 쓰는지 궁금합니다.
백화점 브랜드 입점도 단계적으로 생각은 하고 있어요. 컨택을 하고 있는 브랜드도 있고요. 현재 저희가 좀 더 집중하고 있는 건 대중적이진 않아도 자사몰을 통해 팬덤을 보유한 브랜드예요. 결국 컬리 패션이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은 고유한 스타일을 가진 브랜드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뷰티컬리는 백화점 1층 매장에서나 만날 수 있는 럭셔리뷰티 중심으로 론칭 초기 브랜드 라인업을 구성했다.
Q.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R2W, 어라운드율(AROUND YUR) 같은 브랜드요. 론칭했을 때 컬리 고객들이 정말 좋아해 주셨는데요, 공통으로 자체 온라인몰 기반으로 운영하는 브랜드에요. 초반에는 이런 부류의 브랜드를 집중적으로 큐레이션하되, 제도권 브랜드나 백화점 브랜드, 해외 브랜드도 꾸준히 영입 노력을 하고 있어요.
Q. 타깃 연령층도 있나요.
컬리에는 정말 다양한 여성이 있어요. 같은 20대, 30대여도,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이 제각기 너무 다르죠. 당연히 컬리의 메인 타깃을 보긴 하지만, 연령대로 나누어 그루핑(grouping)은 하지 않고 있어요. 오히려 연령의 구분이 그 외 고객들이 진입하는 데 한계를 만드는 것 같아요.
20년 넘게 패션. 그럼에도 즐거울 수 있었던 이유
Q. 20년 이상 패션 일을 하셨어요. 처음부터 패션 전문가를 꿈꾸셨던 건가요.
원래 옷을 진짜 좋아했어요. 옷 사는 것은 물론 브랜드를 그냥 알아가는 것도요. 패션으로 커리어를 시작하진 않았지만 커리어 초반에 빠르게 패션 이커머스로 전환한 건 정말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마음과 달리 일이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운이 좋게 일도 너무 잘 맞았어요. 직접 고른 브랜드의 매출이 터졌을 때 기쁨을 맛보니 그만둘 수 없었죠.
Q.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되니 더 좋아하게 되고, 또 잘하게 되셨군요.
네. 패션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좋아하면 관심을 더 두게 되잖아요. 제가 패션 커리어를 시작했던 삼성물산은 국내 브랜드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다가 코로나로 오프라인 매장을 못 열게 됐어요. 덕분에 해외 브랜드까지 이커머스몰로 론칭을 하게 됐었죠.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다음 직장은 무신사였는데요. 무신사에서는 신규 여성 플랫폼을 오픈하는 일을 했어요. 2년 정도 짧게 있긴 했지만, 여성 고객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배우게 된 계기였어요.
Q. 원래도 새로운 도전을 즐기시는 편인가요.
저는 제가 편안한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근데 어느 순간 걸어온 길을 돌아봤더니 새로운 일을 정말 많이 했더라고요. 대기업에 있으면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팀이나 조직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새로운 비즈니스를 맡아서 한 덕분에 자유도가 확실히 높았어요. 특히 저는 동일한 일을 반복적으로 할 때보다 새로운 일을 할 때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라 의도적으로 그런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기도 해요.
Q. “가장 새롭다”라고 느끼는 곳은 그럼에도 컬리겠네요.
그렇죠. 거쳤던 직장이 다 패션 기반 회사이기는 했으니까요. 컬리에서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컬리 헤비 유저(heavy user)이기 때문이었어요. 컬리가 상품을 제안하는 방식, 고객을 대하는 태도를 이미 ‘찐 고객’으로서 잘 알고 있었죠. 비록 패션 회사는 아니더라도 패션 사업을 전개하는 데 어떤 포인트가 강점이 될지 보였어요. 아무리 비즈니스 모델이 좋아도 좋은 고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어요. 컬리에는 이미 저와 같은 ‘컬리 마니아’들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사 제안이 들어왔을 때 망설임 없이 하겠다고 답했죠.
재미있는 건, 컬리에 입점한 패션 브랜드 대표님들 90% 이상이 컬리 고객이라는 거예요.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컬리가 어떤 식으로 상품을 고르고 고객에게 선보이는지 이미 잘 알고 계시죠. 새벽 배송도 너무 익숙하게 쓰고 계시고요.
Q. 컬리 입사 후 가장 기억에 남는 론칭 프로젝트가 있으시다면요.
오르(ORR)요. 오르는 매출 목표도 큰 데다 전 상품을 새벽 배송으로 진행해야 했어요. 판매 시점에 물류센터에 모든 상품이 입고돼 있어야 했기 때문에 물량 규모가 어마어마했죠. 여러 부서가 한치의 오차 없이 돌아가야 하는 프로젝트여서 체크리스트가 한 30-40개는 됐던 것 같은데요(웃음). 공을 들인 만큼 큰 실수 없이 론칭을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힘들었지만 성취감이 제일 컸던 프로젝트로 기억해요.
Q. 뷰티컬리도 화장품을 샛별배송으로 받는 경험을 해보기 전까지는 얼마나 편리한 경험인지 대부분의 고객이 몰랐다고 들었어요. 많은 고객분이 오르를 통해 패션 상품을 새벽 배송으로 받는 경험을 하셨겠네요.
네. FBK*를 확장하고 있는 이유에요. 예를 들어, 캐시미어 코트는 새벽 배송으로 받아서 출근할 때 바로 입고 나갈 수 있고요. 헌터 부츠를 새벽에 받았는데 그날 아침 비 소식이 있다면 신고 나갈 수 있죠. 고객분들이 새벽 배송으로 패션 상품을 받는 경험을 처음에는 별로 기대하지 않지만, 한번 경험하고 나면 좋은 경험이라는 걸 아세요. 브랜드 수요도 점차 많아지고 있고요. *FBK(FBK·Fulfillment By Kurly) : 컬리의 자체 풀필먼트 서비스. 판매자가 컬리에서 상품을 판매할 때, 상품의 보관, 재고 관리, 포장, 배송, 고객 응대(CS)까지 물류 전반의 과정을 컬리가 대행해주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우리는 컬리 안의 작은 스타트업
Q. 컬리에 입점하는 패션 브랜드처럼 패션팀도 처음부터 세팅하셨을 텐데요. 제일 중점적으로 보셨던 포인트가 궁금해요.
기본적으로 패션과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를 많이 보고요. 도전하기 좋아하고 열정적인 분을 굉장히 선호해요. 실패한 경험이 있거나 경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일을 진심으로 대한다면 괜찮다 주의입니다. 컬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조직이고, 특히 패션은 한땀 한땀 쌓아가야 하는 단계기 때문에 본인이 오너십을 갖고 일을 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어요. 면접 볼 때 일부러 좋은 레퍼런스는 이야기하지 않기도 합니다(웃음). “컬리 패션은 완전 제로 베이스인데, 그럼에도 괜찮겠냐”라고 물어보죠.
Q. 0에서 1을 만들어가는 걸 체질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확실히 있더라고요.
맞아요. 성향에 따라서 0에서 1로 빌드업(build-up)하는 걸 잘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1에서 10으로 스케일업(scale-up)하는 걸 잘하는 친구가 있어요. 현재 패션 팀에는 확실히 자신이 처음부터 판을 만드는 과정을 즐기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 것 같아요.
Q. 팀 문화는 어떤가요.
새로 합류한 분들이 많아서 팀 문화는 계속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봐주시면 되는데요. 저희가 현재 집중하는 건, 컬리 패션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하고 서로의 합의를 끌어내는 일이에요. 팀원 모두 각자가 생각하는 패션이 다 다르거든요. 개인의 경험일 수도 있고, 취향 때문일 수도 있겠죠. 그런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되 ‘컬리 패션’으로 수렴하기 위한 대화를 많이 하는 게 팀의 특징이라면 특징일 것 같아요.
Q. 아직 맞춰가는 과정이라고는 하셨지만, 그래도 팀의 리더로서 지연님이 만들어가고 싶은 팀의 ‘상’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언제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MD라고 정의해요. 식품, 뷰티, 패션 등 카테고리는 달라도 결국 MD는 ‘우리 고객에게 가장 좋은 상품을 발굴하는 사람’이잖아요. 컬리 고객이 좋아할 만한 상품을 깊게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개발해서 제안하는 MD가 많은 팀이 되길 기대하고 있어요.
또한 컬리의 DNA 중 팀에 잘 이식됐으면 하는 것 중 하나는, 가능성이 있다면 빠르게 의사결정 해서 시장에 진입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전략을 유동적으로 수정하는 거예요. 고객과 시장은 매일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현업에서는 그 변화를 모두 예측할 수 없어요. 사전에 완벽하게 조사하고 계획 세워 시장에 진입하면 이미 트렌드는 바뀌어있죠. 일단 빠르게 실행하고 과정에서 작은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반복해야 다음에 큰 성공을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Q. 작년 3월에 합류하신 후 1년 반 정도가 지났습니다. 컬리 패션은 지연님이 예상했던 속도대로 가고 있나요. 현재 컬리 패션팀은 어느 단계에 와있을까요.
마음은 더 빨리 가고 싶어요(웃음). 하지만 패션 비즈니스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선행돼야 하는 프로세스가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개선을 해가며 나아가고 있어요. 사실 속도는 상대적인 거라 외부에서는 컬리 패션의 속도를 어떻게 느끼실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컬리는 훌륭한 고객군을 보유하고 있고, 식품과 뷰티도 단단한 고객층 기반으로 사업을 잘 운영해 왔기 때문에 패션도 제 속도로 잘 성장하고 있다고는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컬리 고객에게 맞는 브랜드 구성을 선보일 계획이에요. 좀 더 장기적으로는 ‘패션 하면 컬리’를 떠올릴 정도로 패션 또한 컬리에서 중요한 카테고리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습니다.
일하는 마음은 컬리인들의 커리어 인터뷰 콘텐츠 입니다. 컬리의 매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가짐과 원칙으로 일하고 있는지 들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