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영의 일하는 마음] 20년차 프로덕트 매니저가 말하는 기술과 욕심, 다정함에 대하여 

2025.10.17

“기술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만드는 데 쓰여야 해요. 기술을 더 드러내려 욕심을 투영한 순간, 제품의 본래 가치는 모두 사라지고 뛰어난 기술 홍보만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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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 이은영 그로스 본부장

  1. 스노우, 제페토 등 전 세계인이 쓰는 프로덕트를 기획하고 최근 컬리에 합류한 이은영 그로스 리더를 만났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프로덕트에 접목할 때는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있다고요. 
  2. 지난 9월 오픈한 컬리의 식단 관리 앱에도 AI가 적용됐습니다. 식단 관리에 인공지능은 왜 필요했을까요. AI가 만드는 고객 경험에 대해서도 들어봤습니다. 
  3. 모바일 태동기를 거쳐 이제는 AI 도입기의 전선에서 프로덕트를 만들고 있는 이은영 리더에게 물었습니다. “모두가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는 시대, 프로덕트 전문가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너와 나의 거리 20cm, 빠른 실행의 비결 

Q. 최근에 ‘루션’이라는 서비스를 오픈했습니다. 기획 배경이 궁금합니다.

루션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탄생한 서비스예요. 컬리에는 가격대가 좀 있더라도 몸에 좋은 것을 찾는 고객이 많습니다. 컬리 고객의 생애 주기에서 지금 가장 관심 있고 고민하는 주제도 건강이고요. 실제로 컬리 상위 검색어를 보면 ‘건강’, ‘다이어트’는 항상 10위권 안에 들어가 있어요. 올해는 저속노화, 키토 식단의 검색량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컬리의 상품 큐레이션도 그런 고객 특성을 반영해서 이루어집니다. 큐레이션은 좋은 상품을 소싱해서 추천하는 것도 있지만, 고객이 건강한 상품을 고르는 과정에서 정확하고 개인화된 정보를 잘 전달하는 것 또한 넓은 의미의 큐레이션에 포함됩니다. 결국 큐레이션을 더 잘하기 위해 ‘루션’이라는 서비스가 필요했고, 컬리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란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Q. 루션은 앱을 다운로드 받아 설치해야 합니다. 컬리몰이 아닌 별도 앱으로 분리한 이유가 있을까요. 

현재 루션은 서비스의 정체성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식단 관리 서비스’로 분류돼 있는데요. ‘건강’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먹는 것 뿐만 아니라, 운동, 숙면, 멘탈 케어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차원에서는 식단 관리 그 이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향후 서비스의 성장이나 폭을 넓혀가는 데는 별도 앱이 유리한 방향이라고 판단했습니다. 

Q. 별도 앱이지만 컬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컬리 계정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네, 그래야만 식단 추천부터 구매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이었어요. 지금은 컬리 고객만 사용할 수 있지만 어느 시점에는 건강에 관심 있는 누구나 회원 가입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건강 관련 정보나 식단 추천을 얻을 수 있는 서비스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Q. 루션은 기획부터 출시까지 소수 정예로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려움은 없었나요. 

그로스 조직은 목적 조직이에요. 그로스 안에는 ‘스쿼드*’라는 가상의 조직이 있는데요, 각 스쿼드가 하나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한 스쿼드는 PM(product manager), 엔지니어, 디자이너, 비즈니스 등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한 필수 인원으로 이루어져 있죠.  

*스쿼드(squad) : 다양한 직무의 구성원들이 모여 특정 목표를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팀 조직을 의미. 군대에서 유래했으나 현재는 스포츠팀 선수단, 게임 팀, 기업 및 IT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인다.

최소한의 구성이지만 인원이 적어서 힘들다고 느꼈던 적은 없어요. 오히려 너무 많은 인원이 루션앱을 만드는 데 관여돼 있었다면 오히려 출시 일정이 더 늘어났을 거라고 생각해요. 관점이 다양한 건 좋은 일이지만 또 너무 많으면 프로덕트를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아요. 스쿼드 특성상 최소한의 필수 인력으로 움직이다 보니 실시간으로, 압축적으로 논의하면서 빠르게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송길영 박사의 책 <경량문명의 탄생>에서는 ‘앞으로는 작고 빠른 조직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라고 말합니다. 모든 조직이 작고 빠르게 움직이기 원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이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인데요. 루션팀이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루션팀만 생각했을 때는 ‘물리적인 거리’가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로스 조직은 서로 간의 거리가 20~30cm인 공간에서 일하고 있어요. 스탠딩 미팅도 자주 하고요. 각자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야기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합니다. 동료끼리 가깝게 있다 보니 대화의 빈도가 높아지고, 오가며 이야기하면 되니 굳이 미팅룸을 잡아 회의하지 않아도 되고요. 루션을 만들면서 사람 간의 물리적 거리가 의외로 일의 속도를 높이는 데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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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 관리앱에 AI가 꼭 필요했던 이유

Q. 루션을 구현하는 데 AI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루션에서 AI가 만들고 있는 고객 경험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루션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은 식사 기록이에요. 사용자의 식사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야 식단을 제안할 수 있기 때문에, 기록이 곧 루션 서비스의 시작인 것이죠. 그렇지만 기록은 태생적으로 귀찮은 일이잖아요. 누구나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AI를 활용해 기록의 과정을 최대한 편하게 만들었어요.

음식 사진을 업로드하면 컬리가 보유하고 있는 음식 데이터베이스에 잘 매칭해서 음식 정보를 인식하고 성분과 칼로리를 분석해 줍니다. 저희가 한 끼에 먹는 음식 가짓 수만 적어도 3-4개는 될텐데요, 그걸 일일이 다 검색해서 입력해야 하는 서비스라면, 저라면 포기했을 것 같아요(웃음). 루션은 사진 한 장만 등록하면 그 모든 과정을 대신해 주기 때문에 기록이 훨씬 간편하고 쉬워진다는 게 한 축 있고요. 

두 번째는 컬리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음식을 AI가 인식해 새로운 음식 정보를 실시간으로 생성하는 역할도 하고 있어요. 음식 정보는 매우 비정형적인 데이터예요. 예를 들어, 김치찌개도 누가 조리하느냐에 따라서 돼지고기 김치찌개, 참치 김치찌개 등 수십 가지가 나올 수 있는데, 저희가 세상의 모든 김치찌개 데이터를 다 가지고 있을 수는 없어요. 고객은 먹었지만 컬리에는 없는 음식 정보를 AI가 빠르게 입력해 주는 것이죠. 만약 저희가 세상 모든 음식 데이터를 다 구축하고 서비스를 시작하려 했다면 아마 몇 년이 지나도 계속 개발 중이지 않을까요. 

Q. 루션의 유저로서 다른 팀원과 추천 식단을 비교해 보니 정말 개인별로 식단이 다르더라고요. 식단 추천 과정에도 AI가 적용된 걸까요.

네. 앱 가입 시 수집한 기본적인 신체 정보, 선호하는 식사 습관, 기대하는 목표 등에 대한 데이터와 사용자의 음식 기록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식단을 추천해 줘요. 식단 추천 과정에서 루션의 가장 큰 장점은, 대부분의 서비스는 ‘이거 먹어보세요’에 그치지만 루션은 ‘먹어보세요’ 그리고 ‘컬리에서 이런 상품을 구매할 수 있어요’ 까지 연결된다는 거예요.  

Q. 오픈한지 얼마 안 된 서비스다 보니, 여러 가설을 검증하는 단계일 것 같기도 해요. 기존에 세워둔 가설과 많이 다른 부분도 있을까요.

다행히 아직은 가설과 비슷한 방향으로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어요. 기대했던 것보다 흥미로운 지표는 음식 기록의 비율인데요. 현재 루션 사용자의 70~80%가 음식을 기록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중 대부분이 하루에 최소 2끼를 기록하고요. 하루에 한 끼 기록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은데 두 끼를 기록하다니 신기한 일이죠.

루션의 추천 식단을 보고 상품을 확인하는 전환율도 거의 90% 육박하게 나오고 있어요. 추천 식단과 상품이 이질감이 들고 접근이 어려우면 상품까지 보러 가는 비율이 현저히 낮았을 텐데요, 조리가 간편한 음식 중심으로 계속해서 개선하다 보니 가설 대비 전환율이 높게 나오는 것 같아요.

Q. 루션 외 그로스 조직에서 준비하거나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또 있을까요.

그로스 조직 안에서 현재 3개의 스쿼드가 돌아가는데요, 오늘 이야기한 루션이 그 스쿼드 중 하나고, 나머지는 큐레이터 스쿼드와 리워드 스쿼드가 있습니다.  

큐레이터 스쿼드는 ‘어필리에이트  마케팅(Affiliate Marketing)’으로 알려진 제휴 마케팅 서비스를 기획합니다. 인플루언서나 크리에이터가 컬리의 상품을 자신의 채널에 게시한 후, 해당 링크를 통해 구매가 발생하면 구매 금액의 일부를 수익으로 가져가는 방식이에요. 컬리 큐레이터 프로그램은 테스트를 거쳐 올해 1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했는데요, 현재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제품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9월 기준,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컬리로 유입된 사용자가 26만 명에 육박해요. 

리워드 스쿼드의 대표 서비스는 지난 9월 30일에 오픈한 ‘매일혜택’이 있습니다. 컬리가 제안하는 특정 미션을 완수하면 포인트를 얻고 그 포인트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로, 캐시슬라이드를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건 인지 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인데요. 꼭 엄청난 보상이 아니어도 참여하는 과정이 즐겁고 사용자에게 유의미하다면 보상의 크기 없이 사용자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유저의 행동을 잘 유도하는 장치로 서비스를 설계했지만, 컬리의 상품 조직 또는 마케팅 조직에서 하는 활동을 사용자에게 독려하는 장치로 쓰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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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잘되지 않겠어?” 

Q. 커리어 초기부터 프로덕트 기획일을 하셨습니다. 전공도 프로덕트 관련이었을까요.    

화학공학이 주전공, 경영학을 이중 전공했어요. 공학을 너무 좋아해서 졸업 후에는 당연히 연구원의 길을 걸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경영 수업을 듣게 됐는데, 조모임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웃음). 5~6명이 모여서 주어진 문제를 풀고 토론하는 과정이 그렇게 재밌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됐어요. 생각해 보니 화학공학을 좋아했던 이유도 결국 문제를 푸는 과정 때문이었더라고요. 기존에 존재하는 이론이나 공식에 기반해, 상황에 맞게 응용해 가며 문제를 해결하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Q. 화학공학을 좋아했지만 첫 직장은 네이버였습니다.

당시 화학을 전공하면 졸업하고 의례 밟던 커리어 루트가 있었어요. 선배들 대부분이 그 루트를 밟았는데, 저는 이상하게 마음이 안 가는 거예요(웃음).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네이버 공채였어요. 갑자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나 디자이너가 될 수는 없으니 기획 직군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죠. 

Q. 그 이후로도 20년 가까이 네이버와 연관된 회사에만 계셨다는 게 흥미로워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운이 좋았어요. 모바일이 한창 태동하던 시기에 네이버에서 모바일 전문 회사를 육성하려고 만든 ‘캠프모바일’에 합류했고요. ‘스노우’는 원래 캠프모바일에서 사업부로 시작했다가 독립적으로 키우자고 분사했을 때 함께 나왔어요. 이후 3D, VR, AR 흐름이 있을 때, 네이버에서 ‘제페토*’라는 서비스를 시작할 건데 같이할 수 있겠냐고 해서 합류했죠. 모두 다른 서비스지만 공통점은 서비스가 완전히 제로였던 순간부터 함께 했다는 것과 모두 글로벌 타깃이었다는 점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 건, 네이버는 제품 대부분 국내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고, 한 제품을 10년 이상 꾸준하게 개선하는 일이 훨씬 더 많아요. 반면 저는 끊임없이 새로운 걸 만드는 조직에 있다 보니 색다른 기회가 많이 주어졌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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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페토는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증강현실 (AR) 아바타 서비스로, 국내 대표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불린다.

Q. 회사에서는 절대 깜냥이 되지 않는 사람한테 새로운 일을 시키지 않죠(웃음). 일을 제대로 하셨나 봅니다. 스스로 생각할 때 프로덕트 전문가로서 어떤 재능이 있는 것 같으세요.

두려움이 없는 것 아닐까요.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면 기존에 내가 해왔던 걸 버리고 모든 게 백지인 상태에서 접근해야 하는 일이 많아요. 그렇지만 한 번도 무섭다거나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PM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요. 수많은 사람과 협업하면서 상상했던 제품을 현실로 만들죠. ‘이렇게나 똑똑한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만들고 있는데, 웬만하면 잘되지 않겠어?’라는 생각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Q. 커리어의 전환점을 만든 프로덕트도 있나요.

스노우요. 주변의 모든 사람이 제가 만든 제품을 쓰는 경험을 한다는 게 짜릿했어요. 스노우는 국내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국가에서 마켓 기준으로 1등을 한 번씩 기록했는데요. 프로덕트 만드는 사람에게는 정말 희소하고 귀한 경험이에요. 프로덕트를 성공시키는 짜릿함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작품이라 기억에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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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의 선택을 받는 서비스, 그렇지 못한 서비스 

Q.  올 4월에 컬리 그로스 조직에 합류하셨습니다. 컬리에 어떤 발자취를 남기고 싶으셔서 합류를 결정하셨나요.

외부에서 컬리를 봤을 때, 안 될 수도 있는 것들에 도전을 계속하는 게 재미있고 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컬리 참 이것저것 한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물류까지 겸하는 이 정도 체급의 이커머스 회사가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거든요. 그런 시도를 하기 위해서 인력, 시간을 따로 빼서 지원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합류하고 새로운 걸 시도하는 조직에 적어도 방해는 되지 말자고 굳게 마음먹었습니다(웃음). 조직장이 새로 오면 더 잘 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거든요.  

Q. ‘그로스’라는 특성상 모든 부서와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요, 컬리 그로스 본부는 어떤 일을 하는 조직인가요.

사전적으로 그로스 조직은 빠른 실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저 퍼널(funnel)을 혁신하거나 제품을 개선하는 조직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이제는 그렇게 일하지 않는 조직이 거의 없어서, 일하는 방식이 조직의 특성이라고 보지는 않고요. 대부분의 그로스 조직이 주로 현재 제품을 최적화하거나 개선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저희는 ‘유입’과 ‘전환’ 중심으로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게 차별점이에요. 

Q. 그로스 본부의 리더로서 은영님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조직을 리딩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은 조직 내 다양한 자원을 잘 분배하는 일이에요. 컬리에게 지금 제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을 많이 합니다. 중요도에 맞게 최적의 리소스를 사용하고 빠르게 목표에 도달하도록 하는 일이 저의 중요한 역할이자 책임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Q. 프로덕트 전문가 관점에서 본 ‘컬리’라는 서비스는 현재 어떤 라이프사이클에 와 있나요.

고객일 때도 그렇고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으로 바라볼 때도 그렇고, 뚝심 있는 서비스라고 느꼈어요. 서비스를 만들다 보면 프로덕트 담당자의 욕심이 곳곳에 반영돼요. 특히 커머스처럼 매일의 매출이 중요한 곳에서는 목표 지표를 만들기 위해 욕심이 과하게 묻어날 때가 많죠. 근데 컬리는 그 욕심을 굉장히 잘 통제하면서 제품을 만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사이클 관점에서는 개선이 필요하고 부족한 부분은 당연히 있지만, 꽤 성숙한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해요. 컬리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커머스가 비슷한 수준일 것 같은데요. 현재 단계에서 AI를 얼마나 잘 접목해서 기존에 없던 쇼핑 경험을 만들어내느냐가 모두의 미션이고 과제일 거예요. 

Q. 실무자의 욕심이 반영된 프로덕트는 서비스 본질과는 동떨어진 과한 기능 같은 거겠죠.

맞아요. 사용자의 필요에 기반한 기능이라기보다는 실무자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능인 것이죠. 프론트(front)에 계시는 분들은 무슨 말인지 잘 아실 것 같은데요. 욕심을 제어하면서 오로지 서비스의 본질과 고객 경험만 생각하며 프로덕트를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긴 해요. 

Q. 프로덕트 리더의 역할은 그런 하나 하나의 욕심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일이기도 하겠네요. 

그렇죠.  아이디어는 쏟아지고 프로덕트에 이것저것 다 넣어보고 싶은 마음, 저도 많아요. 하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그중 정말 유의미한 임팩트를 내는 아이디어는 사실 한두 개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요. 나머지는  있어도 없어도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프로덕트 팀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다수의 의미 없는 일을 하느라 구성원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도록 하는 일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Q. 스노우, 제페토, 그리고 루션까지, 기술을 프로덕트에 적용하는 일을 많이 하셨어요. AR, VR, AI 등 새로운 기술이 부상할 때 어떤 서비스는 기술을 잘 적용해서 사용자의 선택을 받고 어떤 서비스는 외면을 받습니다. 누구보다 기술의 쓰임을 많이 고민하셨을 것 같은데요. 기술이 어떻게 쓰여야 유저에게 선택 받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까요. 

초반에 말씀드렸던 ‘욕심’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되는 것 같아요. 기술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만드는 데 쓰여야 해요. 기술을 더 드러내 보이겠다고 너무 많은 욕심을 투영하는 순간, 원래 제품이 사용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가치는 모두 사라지고 뛰어난 기술 홍보만 남게 됩니다.  

사람들에게는 내 아바타가 생동감 있으면 최고고, 내 얼굴이 예쁘게 나오면 최고입니다. 내 식단이 내 마음에 쏙 들게 추천되면 그냥 좋은 것이죠.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그런 것이지, 거기에 증강현실이 쓰였건 AI가 적용됐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걸 구현하기 위해 기술을 수단으로 쓰는 것이지, ‘우리의 대단한 기술로 어떻게 제품을 만들지?’ 라고 거꾸로 생각하면 좋은 서비스는 절대 안 나왔을 것 같아요. 언제나 시작은 ‘사람들은 뭘 좋아할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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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 프로덕트 전문가로 살아남으려면

Q.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알아차리는 직관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 모두 사용자의 페인포인트(pain point)나 욕구를 발견하고, 그걸 해결 혹은 증폭하기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만듭니다. 책 한 권에 작가의 인생과 경험이 담겨 있듯이, 프로덕트 하나에도 사용자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새로 나온 제품, 업데이트된 제품 등 다양한 프로덕트를 계속해서 보고, 뭐가 좋은지, 안 좋은지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찾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그 작업을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해오신 분들이 높은 확률로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 같아요.

Q. PM은 곧 ‘프로덕트의 CEO’라고 들었습니다. 프로덕트가 잘되면 가장 주목을 받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잘 안되면 가장 많은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도 하죠. 프로덕트 팀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왕관에 대한 부담을 어떻게 견뎌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프로덕트 전체를 놓고 보면 잘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게 훨씬 더 많습니다. 좋은 말 들을 때보다 나쁜 말 듣는 일이 더 많다는 의미인데요. 부담감이 엄청 큰 건 사실이지만 이제는 좀 당연하다고도 생각해요. 프로덕트 헤드의 결정에 따라서 많게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움직여요. 어떤 결정을 하거나 방향을 제안할 때는, 그만큼 많은 분들의 시간을 쓰기 때문에 조심하고 또 신중해야 하죠. 잘못된 결정을 했다면 가장 먼저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맞다고 생각하고요.

Q. 스스로 어떤 PM이라고 생각하세요.

시기마다 그리고 같이 일하시는 분들에 따라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정형화된 타입을 정해두기보다는 상황에 맞게 변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나는 옳아야 하고, 정답은 나한테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욕심을 부리던 시절도 있었어요. 연차가 쌓이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는 걸 경험한 후에는, 내가 PM이라고 하더라도 정답을 내는 사람이 꼭 내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정답을 누가 냈는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완성된 제품으로 사용자에게 잘 소구 되는 게 가장 중요하고, 그게 제 역할이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 쑥스럽긴 한데요. 이제는 좀 다정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웃음). 제가 원체 그런 사람이 아니다 보니 그렇게 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Q. 왜 다정해지기로 결심하셨나요(웃음).

프로덕트는 결국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잖아요. 하나의 프로덕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반복해요.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같이 일하는 분들의 신뢰를 얻으면서 결과는 결과대로 잘 내는 사람이 될 고민을 많이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다정함이란 키워드가 자연스럽게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AI가 프로덕트 하나를 뚝딱 만드는 시대에 PM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고 보시나요.

이제 기술적인 부분이나 규칙이 있으면 해낼 수 있는 일은 사람이 AI보다 잘할 수 없습니다. PM이 잘해야 하는 일은 더 본질적인 일이죠. 데이터를 예로 들면, 데이터를 취합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일은 AI의 영역이에요. 반면, 데이터가 나온 배경을 해석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한데요, 이 지점에서 프로덕트 매니저의 역량이 드러날 거라고 생각해요. 데이터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파고드는 과정에서 사용자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가기도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같은 고민도 많이 하거든요. 기본적으로 사용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고민 자체가 불가능하죠. 그래서 AI로 인해 PM의 역할이 바뀐다기보다는 원래 프로덕트 담당자에게 꼭 필요한, 사람에 대한 이해, 인문학적인 역량이 오히려 기존보다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을 제외하면 PM에게 AI는 새로운 기회입니다. 저는 AI를 ‘씽킹 파트너(thinking partner)’라고 부르는데요. 혼자 생각해 보고 고민되는 것들을 AI에게 언제든 말을 걸어서 물어봅니다. 요새는 엔지니어나 디자이너한테 정식으로 업무를 요청하기 전에 AI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하고요. 생각의 여정을 함께 해주는 동료가 24시간 상시 대기하고 있다는 게 정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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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마음은 컬리인들의 커리어 인터뷰 콘텐츠 입니다. 컬리의 매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가짐과 원칙으로 일하고 있는지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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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주

좋아하는 마음으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