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슬아의 일하는 마음] 오늘 나는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지, 매일 아침 물어봐요

2025.05.20

“매일 아침 눈뜨면 물어봐요.
오늘 나는 좋은 컨디션인지,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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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 김슬아 대표.

컬리가 10살이 되었습니다.
컬리인들의 커리어 이야기를 전하는 <일하는 마음> 시리즈는 10주년을 맞이하여 조금 특별하게 시작해봅니다.
일하는 사람이자 컬리 팀 리더인 김슬아 대표와 <일놀놀일> <질문 있는 사람> 등을 쓴 저자이자 마케터 이승희 님이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만났어요. 10년 동안 훌쩍 커버린 컬리의 뒤에는 어떤 마음과 원칙, 가치들이 함께 했을지, 2편에 걸쳐 전해드릴게요.

🗣️인터뷰 : 이승희 ✍🏻편집/윤문 : 공현주 📸사진 : 송승훈

  1. 어떤 일을 10년 넘게 꾸준히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일하는 사람 김슬아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나에게 너무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답했습니다.
  2. 일을 잘하기 위해서 선택한 건 하루에 0.001%씩 나아지는 일이었다고요. 마치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매일 방망이를 다듬으며 성장의 변곡점을 기다리는 것이죠.
  3. 그럼에도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있었을 겁니다. 의외로 컬리가 가장 빠르게 큰 시기였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극복해 나갔을까요?


내게도, 누군가 에게도 의미 있는 꿈을 꾸다

이승희(이하 숭) : ‘잘 먹고 잘 사는 삶’에 진심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제 꿈은 소소했어요. 가족들이랑 맛있는 거 먹으면서 행복하게 오래 사는 거요. 해외 생활을 하면서 그 마음이 더 커졌던 것 같아요. 저희 집은 평일엔 아침 저녁, 주말엔 삼시세끼 꼭 같이 먹는 집이었거든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일을 하셔서 외할머니와 같이 살았는데요. 그땐 급식도 없어서 아버지가 도시락 싸주시고 외할머니가 매일 새 밥과 국을 해주셨어요. 그런 삶이 당연하지 않고, 정말 엄청난 일이라는 걸 집을 떠나서야 알게 됐죠.

제가 16살 때 유학을 갔는데요. 보통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나오는 밥을 먹는데, 카페테리아는 수 백인 분에서 많게는 수 천인 분을 만드니까 이것도 시간 맞춰 안 가면 못 먹거나 다 식은 걸 먹는 거에요. 아니면 어머니가 한국에서 보내주신 가공 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고요.

숭 : 어렸을 때 경험과 타지 생활의 낙차가 심했었네요.

너무 달랐죠. 원래 좀 건강 체질이기도 하고 어렸을 때 워낙 밥을 잘 먹어서 병치레가 없었는데요. 31살에 한국에 돌아올 때는 아토피랑 몇몇 알러지도 생겼었어요. 타지에서 그런 경험들 때문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만 이루기 힘든 일이라는 생각을 진짜 오래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문제가 내게 이 정도로 절실하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만이라도 좀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창업하게 된 것도 있죠.

숭 : 원래도 뭔가 불편한 게 있으면 해결을 하시는 편이신가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fail fast’가 있어요. 해보기 전에는 진짜 모르더라고요. 작게 시작하더라도 빠르게 실행하고, 뭐라도 배우면서 앞으로 가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컬리도 무모하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컬리 처음 론칭했을 때 상품이 7-8개 였는데요. 무료 배송 기준이 4만 원이었어요. 저희가 판매하는 상품을 모두 구매해도 4만 원이 안 되는 거예요(웃음).

근데 제가 정말 궁금했던 건, ‘좋은 상추, 좋은 사과, 좋은 계란을 팔면 한 명이라도 사는 고객이 있을까?’ 그리고 ‘이 상품들을 새벽에 가져다 드렸을 때 어색해 하지는 않을까?’였어요. 이건 서비스를 오픈하기 전에는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일단 소싱 가능한 상품들로만 구성해서 테스트를 해본 거죠.

숭 : 해보지 않은 영역에 대해서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으셨어요.

확신을 갖지 않죠(웃음). 저는 항상 “이거 망해도 안 죽고 안 굶는다”고 생각해요. 이게 잘 안되면 내 인생 망가진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잘 안 돼도 굶지 않고 죽지 않으니 한번 해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편이고요. 하고 싶은 거 해보면서 ‘fail fast’하면 무조건 배우는 건 있을 테니 재미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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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 역삼 사옥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승희 작가와 김슬아 대표.

아침 11시가 가장 행복한 사람

숭 : 컬리가 10년이 되었습니다. 한 서비스를 이렇게 오래 하실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얼마 전에 생성형 AI 관련 행사를 갔습니다. 창업가 분들이 좀 있는 행사였는데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왠지 인간이 모두 대체될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떤 아이템으로 사업을 해야 할지 불안을 많이 느끼시더라고요. 두 가지를 말씀드렸는데요, 첫 번째로 인류가 존재하는 한 보편적으로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가치를 찾으시라고 했습니다. 저는 시대를 막론하고 현존하는 비즈니스 모델 중 최고의 모델은 기독교라고 생각해요.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마케터시죠.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수 밖에 없어요.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를 정하시면 비즈니스가 대체될 리 없을 거라고 말씀드렸고요.

그럼에도 비즈니스를 성공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그게 나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어서인 것 같아요. 두 번째로, 잘될 것 같은 것 말고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잘될 것 같은 사업을 해서 성공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나에게 너무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포기가 힘든 일, 그래서 계속 하다 보니 잘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컬리는 이 두 가지가 딱 들어맞는 비즈니스였기 때문에 10년 동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숭 : 그럼에도 지치는 순간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컬리에서 쇼핑을 합니다. 내가 컬리를 그만두면 ‘이거 다 못 먹겠구나’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어요. 그리고 다음 주에 나올 상품들을 생각하죠.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아침 11시입니다. 컬리 신상품이 항상 그 시간에 오픈하거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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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아 대표를 행복하게 하는 컬리의 ‘신상품’ 코너. 매일 아침 11시 업데이트 된다.

숭 : 상품위원회*에서 이미 다 보지 않으세요?(웃음)

맞아요. 위원회에 많은 상품이 올라오지만, 개인적으로 ‘이 상품은 정말 대박이다’, ‘우리 일 좀 잘하는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상품들이 있어요. 그런 상품이 올라오는 날은 전날 밤부터 엄청 기대를 하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저에게 이런 기쁨을 주는 상품이 있다는 게 엄청난 행운이라 생각해요.

창업 초반에는 언젠가 재미있는 상품이 안 나오면 어떡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던 것이, 일단 시장은 계속해서 변하고요. MD들이 그 변화에 맞춰 창의성을 발휘하죠. 컬리는 몇 년 동안 동일한 스펙으로 팔고 있는 상품이 거의 없어요. 계속해서 미세 조정을 해요.

*상품위원회 : 김슬아 대표를 포함해 MD, 마케팅, 브랜드 등 상품 관련 전 부서가 매주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 컬리의 모든 상품은 상품위원회를 통과해야 고객을 만날 수 있다.

숭: 어떤 식으로요?

시장의 입맛에 맞게 조정하는 거죠. 대표적으로 ‘이연복의 목란’ 짬뽕이 있어요. 컬리 HMR(가정간편식) 중 가장 많이 판 상품일 텐데요. 아마 맛이 한 7-8번은 바뀌었을 거예요. 초반에는 훨씬 매운 맛이었는데, 너무 맵다는 고객 후기가 많아서 맵기 조절을 했고요. 그 사이에 재료의 원산지가 바뀌면서 레시피를 조정하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목란 짬뽕에 오징어가 매우 중요한데 오징어 수급이 어렵게 됐다면, 오징어를 줄이면 그 맛이 안 날 텐데 뭘 더 넣어야 할지, 이런 논의들을 계속해서 하는 것이죠. 컬리에 목란 같은 상품만 수만 개이니 저희가 쌓은 상품 안에서만 개선을 해도 사실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는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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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복의 목란 짬뽕. 상품 후기만 15만 개에 달할 정도로 컬리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매일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숭: 상품 후기는 MD분들이 상품위원회에서 얘기를 하시는 건가요?

MD분들은 당연히 자신의 상품을 열심히 모니터링 하고요, 핵심 상품은 저도 후기를 열심히 봅니다. 모든 상품은 초반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결국 상품이라는 것은 저희가 고객에 대한 가설을 설계해서 내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 가설이 실제로 맞았는지 검증하는 작업이 초기에 매우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해요. 이 시기에 고객 후기를 매우 엄격하게 보면서 맛, 재료 등을 조정하죠.

특히 신선 식품은 시즌 초기에 품질이 잡히지 않으면 그 시즌을 운영할 수가 없어요. 요새* 제일 열심히 보는 상품 후기 중 하나가 산딸기, 블루베리 입니다. 산딸기는 당일 아침 수확해 그날만 팔고 끝내는 상품인데요, 곰팡이가 엄청 많이 핍니다. 그래서 쿨링부터 콜드체인*까지 정말 촘촘하게 운영이 돼야 하기 때문에 혹시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 후기를 빠짐없이 챙겨봅니다.

식품은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동일 상품이어도 미세하게 맛의 차이가 있어요. 김치도 공산품처럼 보이지만 포장 김치 맛이 절대 똑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김치도 배추 품질이 안 좋아지는 여름에는 후기를 더 열심히 보는 편이에요. 물론 컬리에는 부정 후기를 선별해 AI가 답변을 하는 등의 체계적인 프로세스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도 상품 기획자이고 프로덕트 기획자이기 때문에 기획자로서 제가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이디어를 내고, 피드백을 받아서 회고하는 이 체인을 끊임없이 돌리는 것뿐이에요.

*인터뷰를 진행한 시기는 4월 초였다.
*콜드체인(cold chain) : 저온을 유지한 상태에서 유통하는 시스템을 일컫는다.

숭: 다른 인터뷰에서 읽었던 말이 생각납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늘 지향하신다고.

그렇죠. 제가 능력이 출중하면 굉장히 기발한 아이디어로 큰 임팩트를 내면서 사업을 할 텐데요, 저는 제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요. 그런 제가 어떤 일을 잘하려면, 틀릴 수 없는 방향을 찍고 거기까지 매일 성실하게 가는 것 밖에 없다는 걸 일찍이 깨달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하루에 0.001%씩 나아지면 복리 효과로 쌓이면서 어느 순간 변곡점이 발생했을 때 기하급수적으로 좋아진다는 말도 있잖아요. 저는 스스로 그런 사람이 돼야 한다고 믿어서 컬리 초창기 때부터 “우리 비즈니스는 방망이 깎는 노인”이라는 얘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매일 방망이를 깎는 노인의 방망이는 어제와 오늘이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한 2년 쯤 지나서 방망이를 만져 보면 ‘이거 완전 다르네’ 아는 거죠. 그게 컬리의 비즈니스라 생각해요. 수많은 협력사와 상품과 디테일이 짬뽕처럼 섞여서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앞으로 가고 있는 거거든요. 그 과정이 정말 길고 힘들고 별로 좋아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3년, 5년 단위로 옛날을 돌아보면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느끼게 돼요.

숭: 회고와 성장이 대표님 삶에서 꽤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배우고, 성장하고,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나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봤고 정말 많이 배웠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성공인 것 같아요.

일하는마음 (6)

내 역할은 가장 취약한 곳을 메꾸는 것

숭: 컬리를 운영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셨나요.

많은 분들이 코로나 기간이 컬리에게 좋은 시기가 아니었냐고 얘기하시는데, 사실 저는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빠른 성장에서 오는 여러 부작용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때의 흔적들을 조금씩 고치고 있죠.회사가 지속 가능 하려면, 좋은 사람을 뽑고, 그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함께 일을 하면서 성과를 내고, 그 성과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그게 다시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요. 코로나 시기는 회사가 계획하지 않은 외부적 충격으로 수요가 늘고 급속도로 확장이 되다 보니, 이 구조가 무너졌던 시기가 아니었나 해요. ‘일을 쳐낸다’는 말을 정말 싫어하는데 그 시기가 진짜 일을 쳐내는 모드였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가고 있는데 굉장히 불편했던 시기였죠.

숭: 코로나 기간이 꽤 길었어요. 어떻게 극복을 해나가셨나요.

23년 중반 정도 코로나가 완전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사적으로 재정비를 했어요. 전체적인 자산 포트폴리오와 조직 구성을 보면서 일하는 방식을 다듬고, 만약 코로나가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들을 걷어내는 작업을 많이 했죠. 하지만 한번에 해결 가능한 것은 아니어서 지금도 여전히 작업을 하고는 있고요, 다행히 원래 컬리가 가고자 했던 방향으로 많이 온 상태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가 깨달은 바는, 결국 모든 비즈니스는 어떤 궤도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특정 시기에 압축적으로 잘 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런 건 없다는 거였어요. 뭔가 잘 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럴 리 없죠. 그래서 무조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인내심을 가져야 하고, 특히 많은 사람이 관련돼 있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요새도 느끼고 있습니다.

숭: 코로나처럼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해결하시는 편이세요?

어떤 상황인지 리더 분들이랑 많이 논의합니다. 컬리는 특히 리더를 채용할 때 제 1원칙이 ‘불편한 사람을 뽑는다’예요. 바라보는 방향은 똑같지만 성향은 안 맞는 사람을 뽑죠. 저랑 성향이 같으면 비슷한 판단을 할테니 그냥 제가 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컬리 리더십에는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의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다 보니 예측 불가능한 이슈가 발생했을 때 예상치 못한 의견들이 나오는데, 대체로 그 의견들의 조합이 맞는 답이더라고요. 재미있는 건 그 의견들이 아예 반대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각자 다른 맥락에서 보는 의견인 거에요.

각기 다른 리더 분들의 의견들을 잘 종합해서 액션 플랜을 짜는 게 제 역할입니다. 그래서 저는 되게 ‘COO형 CEO’ 라고 말씀을 드려요. 의견을 종합하고 정리하는 걸 잘 하는 편이라, 여러 관점들을 모아서 9단 액션 플랜을 짜죠. 컬리가 그간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많이 겪었는데, 항상 이런 형태로 의사 결정을 해왔기 때문에 큰 실수는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숭: ‘COO형 CEO’라고 하셨는데, 회사가 성장하는 10년 동안 대표님의 리더십 스타일도 변화했을 것 같습니다.

리더십 역량은 전시 사령관과 평시 사령관일 때가 달라요. 컬리 창업 초기에는 사람이 몇 명 없었기 때문에 진짜 전시였죠. 그때는 제가 작은 팀의 리더로서 알뜰 살뜰 살림을 챙겼었고요, 지금은 각 조직마다 리더 분들이 계시고 매우 다양한 구성원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형태가 됐어요. 저는 그럼 또 다른 전쟁터를 찾아 가는 거죠. 제 역할은 컬리에서 항상 제일 취약한 곳을 메꾸는 것이라고 생각 해요. 전쟁터에 가서 0 to 1을 하든, 문제를 찾아내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숭: 스스로 생각할 때 어떤 류의 리더신 것 같으세요?

전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도 낮고 자신감도 낮은 편이에요. 근데 또 자존감은 높아요. 자신감은 낮고 자존감은 높아서 뭐든 꽤 열심히 합니다. 전시 상황일 때는 제가 구성원들에게 가이드를 드려야 할 때가 많은데요, 리더가 자신감이 떨어지면 그 에너지가 구성원들한테 전달되잖아요.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얘기하기 위해 앞단에서 정말 준비를 많이 합니다. 공부도 하고, 이것저것 검토도 많이 하고요.

숭: 구성원들 앞에서 열심히 준비하시는 티는 안내시나요?(웃음)

잘 안 하죠. 그래서 구성원들이 제가 뭔가 항상 뭘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준비를 많이 해서 가니까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내고 마지막까지 디테일을 놓치지 않도록 푸쉬도 좀 하고요, “소피*는 김대리처럼 일한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것 같아요. 저랑 같이 일하시면 살짝 피곤해 하시는 것 같기도(웃음). 근데 어떤 일을 할 때, 제가 충분히 알지 않고 구성원들한테 위험한 전장으로 같이 가자고 하는 건 약간 직무 유기처럼 느껴져요. 여기도 찔러보고 저기도 찔러보자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준비를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컬리는 내부에서 님 호칭을 쓴다. 김슬아 대표는 슬아님 또는 소피라 불린다.

10년 동안 늘 던져온 질문

숭: 컬리도 ‘장보기가 왜 이렇게 불편할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 어떤 질문을 제일 많이 하시나요. 개인적으로도, 창업가이자 대표로서도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나는 오늘 컨디션이 좋고 준비가 되었는가”예요. 저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아프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집중도 못하고 일도 잘 안됩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대충 컨디션이 몇 점인지 점검을 해봐요. 여러 루틴들을 통해 적어도 80점 이상으로는 컨디션을 어떻게든 끌어올리는 편입니다.

제 목표는 죽는 날까지 배우고 성장하는 건데, 제가 포기하는 시점은 몸이 안 좋을 때거든요. 오늘 내가 뭘 할지는 내 컨디션에 달려 있더라고요.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 어떻게 관리하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요. 자기 전에 리셋하고 아침에 컨디션 조절하고, 이 두 가지만 제대로 하자고 정말 많이 생각합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과 해결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잠들기 전에 빨리 지워버리는 거죠.

숭: 잘 되시는 편인가요?

네. 제가 납득이 되면 행동을 빨리 바꾸는 사람인데요, 해결 불가한 것들은 아무리 붙잡고 있어도 해결이 안된다는 것을 창업 초창기에 깨닫고 나서 빨리 포기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이 문제가 지금 해결 안되면 회사가 망할 정도의 이슈인가를 판단할 경험치가 없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들이 다 엄청나게 느껴졌는데요. 10년 동안 별의별 일들을 다 겪으면서, 지금은 어떤 일이 발생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하는 훈련이 된 것 같아요.

숭: 창업가, 회사의 대표로서는 어떤 질문을 하시나요.

의사결정할 때 저는 늘 두 가지를 고민합니다.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이게 지금 내일의 임팩트를 만들어 내는 일인가’를 보고요, 그 결정을 했을 때 ‘우리가 지키려고 했던 가치에 반하지는 않는가’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물어봅니다.

숭: 지키려고 하는 가치는 어떤 건가요.

고객이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 컬리가 지금은 모바일에서 식품과 뷰티, 패션 등을 팔고 있지만, 고객이 행복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의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저희가 남겨야 하는 가치는, 고객이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려면 ‘컬리는 꼭 필요해’라는 느낌인 것이지,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1등을 하겠습니다’ 같은 건 단 한 번도 저희의 비전이고 목표였던 적이 없었어요. 저는 진짜 컬리를 쓰시든 쓰시지 않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숭: 대표님에게 지금 하고 계신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즐거운 인생이 뭘까 생각해 보면, 일단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돼야 하고, 좋은 커뮤니티가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변화하고 성장하는 느낌도 있어야 하고, 간혹 의미 있는 일도 하고 싶잖아요. 제 직업을 정말 잘 골랐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적어도 컬리에서 일하는 동안은 그 균형이 꽤 좋았어요. 물론 저도 일이 진짜 많고 몸이 힘든 날도 있지만, 이 4가지 균형이 이렇게까지 잘 맞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 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주 만족스럽고, 그래서 이 일이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아요.

김슬아 대표

일하는 마음은 컬리인들의 커리어 인터뷰 콘텐츠 입니다. 컬리의 매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가짐과 원칙으로 일하고 있는지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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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주

좋아하는 마음으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