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품은 될 것 같다’는 MD의 탁월한 감각,
자신의 경계를 계속 넘어서야 생겨요.
안 하던 짓 많이 하세요.”

📍들어가기 전에
- 컬리에서 ‘좋은 상품’을 가장 많이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는 곳, 상품마케팅본부의 최재훈 최고커머스책임자(CCO)와 서귀생 푸드·뷰티 본부장을 만났습니다.
- 상품 보는 눈이 까다롭기로 알려진 컬리에서 ‘일 잘하는 MD’로 불리는 MD들은 어떤 역량을 가졌을까요. 상품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은 당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그들에겐 있다고요.
- “컬리 출신 MD들은 확실히 다르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물었습니다. 가장 MD답게 MD 일을 해봤기 때문이라는데요, 무슨 의미일까요.
상품과 마케팅, 서로가 서로를 생각한다
Q. 컬리에서 두 분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최재훈(이하 훈) : 저는 상품과 마케팅을 함께 보고 있어요. 상품 기획부터 소싱, 운영 전반을 다루는 상품 파트가 한 축 있고, 상품을 고객에게 잘 소개하고 고객을 유입, 유지하는 마케팅 파트가 또 한 축 있죠. 상품과 마케팅은 서로 분리해서 운영해야 하는 영역도 있지만,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내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 컬리는 후자에 무게를 두고 상품마케팅본부를 같이 운영하고 있어요.
서귀생(이하 생) : 저는 상품 쪽을 담당하고 있어요. 최근 컬리가 상품 카테고리를 확대하면서 상품 본부가 커짐에 따라 푸드·뷰티와 라이프·패션을 분리했고요, 제가 푸드·뷰티 중심으로 상품 전체를 맡고 있습니다.
Q. MD와 마케팅 조직이 합쳐진 것도 비교적 최근으로 알고 있어요.
훈 : 네, 얼마 안됐어요. 조직은 늘 흐름에 맞춰 변화해야 하는 미션이 있어요. 상품과 마케팅이 분리돼 있다가 합쳐진 이유는, 연결 고리가 많기 때문인데요. 상품 파트에서 좋은 상품을 만들어도 이 상품을 고객에게 보여주고 잘 알리는 역할은 사실 상품 외 채널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요. 마케팅은 마케팅만 바라보면 안 되고, 상품은 상품만 바라보면 안 되는 이유죠. 하지만 두 파트가 유기적으로 섞이기는 사실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MD*는 고객의 반응을, 마케터는 상품의 본질을 서로 생각하며 일하는 것과 아닌 것은 큰 차이가 있죠.
*MD : 머천다이저(Merchandiser)의 약자로 상품 기획자를 의미한다.
Q. 일반적인 구조는 아닌 것 같아요.
훈 : 보통은 상품과 마케팅 조직이 분리돼 있긴 해요. 근데 다른 조직에서 협업을 하는 것과 같은 조직에서 한 몸처럼 움직이는 건 다르더라고요. 상품 출시 후 힘 있게 밀어줘야 하는 경우에는 마케팅 자원을 써야 하고요, 마케팅에서 어떤 계획이 있는데 상품이 제대로 준비가 안돼 있다 하면 상품 파트에서 빠르게 힘을 써줘야 하죠. 이런 일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하나로 묶는 게 효율적이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렇지만 언젠가 다른 변화에 맞춰 다시 분리할 수도 있어요. 조직 구조는 비즈니스 목표에 따라 유연하게 붙였다 떼었다 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컬리는 그런 부분에서 개방적인 편이라 상황에 맞게 또 판단을 하게 될 것 같아요.

MD의 본원적인 역할에 가장 충실한 곳
Q. 컬리가 외부에서 ‘MD 사관학교’라 불리는 것 아셨나요(웃음).
생 : 컬리를 거쳐 간 MD들이 연차 대비 워낙 훌륭한 역량을 보여주다 보니 그런 평가들이 나오는 것 같은데요. 저희가 교육기관은 아니니까 ‘학교’라는 말은 정정은 하고 싶네요(웃음). 국내 유통사 중 컬리만큼 상품의 본질을 파고 드는 곳은 아마 거의 없을 거에요. MD가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고려했을 때 진정성 있게 상품을 대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라는 생각은 들어요.
컬리 파트너사 분들도 컬리MD를 만나면 장기적으로 상품과 브랜드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게 된다고 항상 말씀 하세요. 경력직 MD분들이 컬리에 오셔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부분도, 본인이 주도권을 갖고 하고 싶은 상품 기획을 원 없이 할 수 있다는 부분이더라고요. 컬리 MD 조직에 합류하는 대부분의 이유도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훈 : 컬리가 왜 MD사관학교라 불리는지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봤어요(웃음). 오프라인 유통과 달리 이커머스에서는 MD의 역할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요. 전자상거래까지 폭넓게 봤을 때 대다수가 ‘카테고리 매니저’죠. 시장에 이미 존재하는 상품들을 우리 플랫폼에서 어떻게 더 잘 팔 수 있는가를 주로 고민하지, MD의 본원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 거의 없어요.
Q. MD의 ‘본원적인 역할’이라는 게 뭘까요.
훈 : 상품을 기획하고 만드는 것이죠. MD의 사전적 정의 그대로 ‘머천다이저’에 가까운 사람이요. 그래서 MD라고 하면 사실 “내가 이 상품 만들었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만, 카테고리 매니저 역할을 하는 MD는 “내가 상품 등록했어” 혹은 “내가 상품 관리했어”에 더 가까워요. 즉 상품을 처음부터 직접 핸들링하고 만들 수 있는 기회가 현재 이커머스 구조상 많지 않은 것이고요. 가장 MD답게 MD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컬리다보니, 상품 기획 역량을 갖고 있는 친구들은 그런 갈증을 갖고 컬리를 찾는 것 같아요.
Q. 카테고리별로 이동은 잦은 편인가요.
생 : 타사에 비하면 컬리는 변화가 없는 편이에요. 식품MD가 뷰티 카테고리로 가거나, 식품 안에서도 HMR*MD가 축산이나 신선으로 이동할 확률은 매우 희박하죠. 다만 상품 조직이 이제 많이 커졌기 때문에, 개인의 역량이나 팀의 상황에 따라서 변화가 필요하다면 조금씩 시도해보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물론 앞으로도 강제적으로 할 생각은 전혀 없고요.
*HMR(Home Meal Replacement) : 가정에서 한 끼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 간편식
훈 : 리더급으로 갈수록 카테고리가 바뀌는 경우들은 좀 있어요. 관리 단계에서는 특정 카테고리에 몰입되기 보다는 다양한 카테고리를 핸들링 할 수 있는 역량이 훨씬 중요해지니까요. 그 외 팀원들은 대체적으로 바뀌지 않는 것 같은데요, 담당 상품에 대해 축적한 정보와 파트너사와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에요. 상품 초기부터 하나하나 함께 만들고 소통했던 MD가 수시로 바뀌면 파트너사들도 힘들죠. 그래서 보통 이동보다는 확장을 택해요.
Q. 입사할 때 MD들이 카테고리를 선택할 수 있나요.
생 : 선택 할 수는 없지만 선호도를 고려하기는 합니다. 카테고리별로 TO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적합한 분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아요.
훈 : MD 공채 때는 1-3순위 선호도 조사를 했었고요, 대체로 1,2순위 안에는 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조금 냉정하게 생각하면 신입, 주니어 때 고른 카테고리는 사실 그 카테고리를 잘 알고 선택하는 것은 아니죠. 1순위 카테고리를 맡게 돼도 후회할 수 있고요, 알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럼에도 MD는 해당 상품에 대한 관심도가 어느 정도는 뒷받침 돼야 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싫어하는 영역으로 배치하진 않아요.

상품의 시작, MD의 손끝에서
Q. 최근 슬아님*과 컬리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상품, 품질처럼 고객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영역만큼은, 개인의 자유보다 경험이 많은 이가 책임지고 결정하는, 다소 전통적인 의사 결정 방식을 따른다고 하더라고요. 위에서 말씀 하신 MD의 ‘자유도’와 상충될 수 있어 보입니다.
훈 : 상충돼 보이지만 둘 다 맞습니다. 컬리에서 상품 론칭 할 때를 보면, MD가 시장 조사 하고 상품에 대해 고민을 충분히 한 후 “이 상품 어때요” 가지고 옵니다. 위에서 “이 상품 일단 가져와”는 컬리에선 거의 없습니다. 상품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MD의 자유도가 많이 들어가죠. 다만 그렇게 갖고 온 상품을 커미티*** 하는 이유는, MD의 자유도 그대로 고객에게 오픈 하는 것이 아니라, 일관된 기준으로 최선의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함이에요. 어떻게 보면 커팅(cutting)을 하는 것이죠.
*컬리는 모든 구성원을 -님 호칭으로 부른다. 김슬아 대표도 예외는 아니다.
**[컬리의 일하는 마음] “우리는 결승선 없이 뛰는 곳”
***컬리의 모든 상품은 상품위원회를 통과해야만 고객에게 선보일 수 있다.
Q. 일관된 기준이라 하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훈 : 상품위원회에서 좋은 상품을 결정하는 기준만 70여 가지가 돼요. 슬아님 혹은 경영진 한 명의 그 날 기분이나 취향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가 아닌 것이죠. 상품위원회에 오기까지 MD는 자유도가 있지만 “이 상품 고객에게 선보여도 되겠다”는 최종적인 의사 결정은 공통의 프로세스를 지켜야 하는 것이고요. 상품 출시가 결정되면, 그 순간부터는 다시 MD가 상품의 A to Z를 다 챙기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어떤 조직보다도 MD의 자유도가 넓지만 모든 의사 결정을 다 하는 구조는 아니라고 말씀 드릴 수 있어요.
생 : 중앙에서는 일관된 원칙과 철학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지만, 상품위원회에서 다뤄지는 모든 상품들은 바텀업*으로 올라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MD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대한의 자유도를 보장하고, 회사는 한결같은 기준으로 상품에 대한 전략과 정책을 운영하고요.
*바텀업(Bottom-Up) : 실무진이 낸 의견을 바탕으로 윗사람이 결정하는 방식. 탑다운(Top Down)과 반대되는 상향식 접근 방법.
Q. 그런 결정의 예시를 하나 들어주실 수 있나요.
훈 : 컬리에 ‘희소가치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귀한 식재료를 찾아서 소개하는 것인데요, 솔직히 매출에 하나도 도움은 안되는 상품입니다(웃음). 그렇지만 컬리 MD들은 이런 상품들을 상품위원회에 들고 옵니다. 수익은 안 나도 고객한테 가치가 있으니까요. MD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면, 회사는 인정을 해줍니다. 이 정도의 자유도, 대부분의 유통사에는 없습니다.
좀 더 쉽게 말씀 드리면, MD가 어떤 상품을 가져오면서 “올해 이 상품은 1,000만 원밖에 못 팔 것 같습니다” 라고 했을 때, “그래 한 번 팔아보게나” 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컬리에서는 비록 1,000만 원이어도 우리 기준에 맞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MD는 그 상품을 팔 수 있습니다. 위에서는 이런 결의 의사 결정을 일관되게 해주는 것이죠.

Q. 최종 의사 결정이 일관된 기준으로 내려지는 것처럼, MD들이 처음 상품을 기획할 때도 ‘기준’이 있을 텐데요. 컬리의 다섯 가지 핵심 가치* 중 MD들이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훈 : ‘좋은 것(something better)’ 아닐까요. 저희가 진행하고 있는 IMC 캠페인의 슬로건도 ‘짧은 인생 좋은 것으로’ 인데요, 여기서 말하는 좋은 것은 좋은 상품이겠죠. 결국 MD 관점에서는 좋은 상품이 있어야 고객이 컬리를 찾고 구매를 하는 이유가 될테니까요. 물론 좋은 것, 좋은 상품의 정의가 가격, 맛, 품질 등 여러 가지로 나눠질 수는 있겠지만, 뭐가 됐든 좋은 것의 가치가 하나 이상 있다면 거기서부터 시작은 할 수 있겠죠.
*좋은 것, 집념, 진정성, 다양성, 지속가능성
![[사진1]‘짧은 인생을 좋은 것으로’…10주년 컬리, 이효리 이상순 이찬혁 cf 공개](https://img-newsroom.kurlycorp.com/wp-content/uploads/2025/05/%EC%82%AC%EC%A7%841%E2%80%98%EC%A7%A7%EC%9D%80-%EC%9D%B8%EC%83%9D%EC%9D%84-%EC%A2%8B%EC%9D%80-%EA%B2%83%EC%9C%BC%EB%A1%9C%E2%80%A610%EC%A3%BC%EB%85%84-%EC%BB%AC%EB%A6%AC-%EC%9D%B4%ED%9A%A8%EB%A6%AC-%EC%9D%B4%EC%83%81%EC%88%9C-%EC%9D%B4%EC%B0%AC%ED%98%81-CF-%EA%B3%B5%EA%B0%9C-1.png)
생 : 저도 ‘좋은 것’이 1순위이긴 하나, 좋은 것을 찾고 만들기 위한 과정 전체를 보면 ‘집념’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특히 컬리온리(Kurly Only)나 PB(Private Brand) 상품을 기획할 때는 3-4개월이 걸리는 경우도 많은데요, 그 시간이 굉장히 괴롭고 힘든 시기거든요. 지쳐서 그냥 포기해도 그만이에요. 그렇지만 본인이 ‘이 상품을 고객에게 어떻게든 선보이겠다’는 열정과 의지가 강하면 정말 될 때까지 해보는거예요. 그래서 컬리에서 ‘좋은 것’을 고객에게 선보였다 하면, 담당MD의 이런 집념의 시간이 농축돼 있다고 볼 수 있어요
Q. ‘좋은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학습 가능하지만 ‘집념’은 사실 훈련이나 학습을 통해 이식 하는 게 불가능해 보입니다.
훈 : 네, 강제로 할 수는 없고요. 집념의 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은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단, 리더들이 집중하고 집념을 보이면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예를 들어, 정말 작은 상품 하나 개발할 때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 거예요. 상품의 모든 각도에서 질문을 던지고요. 그런 게 구성원들이 느낄 수 있는 리더들의 집념일 수 있죠. 그런 과정도 없이 MD한테 집념 있게 일하라고 하면 ‘너나 잘하세요’ 나오는 거죠(웃음).

성실함 이기는 감각 없어
Q. MD의 개인적 역량에 대해 나눠보고 싶습니다. 일 잘하는 MD가 되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까요.
훈 : 예전에 베이커리 카테고리에 지원한 MD 면접을 봤습니다. “좋은 MD가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하길래, “전국에 있는 빵집 순례 하시라”고 말씀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베이커리 업체에서 몇 달 인턴 해 본 MD보다 서울에 맛있는 빵집을 자신의 머릿 속에 꿰고 있는 MD가 더 경쟁력 있다고 생각해요. 업무에 대한 실무 경험은 회사에 와서 익히면 됩니다. 덕질로 쌓은 상품에 대한 진짜 경험, 그게 MD의 가장 필수 자질 아닐까 싶어요.
생 : MD가 전문직이라고 하잖아요. 생각해보면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직업 중에 하는 일과 전공의 연관성이 없는 건 아마 MD가 거의 유일할거예요. 다양한 전공과 배경이 다른 관점을 만들고, 그 관점이 고스란히 역량으로 연결된다는 건 MD업의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MD는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있어야 해요. 약간 오지라퍼*가 같은 거죠. 예를 들어, 저 먼 나라의 트럼프 대통령이 매일 어떤 말을 하는지 지금 전혀 영향이 없을 것 같지만요, 원재료 가격에 영향을 주고, 물량을 결정하는 데도 영향을 미치죠. 좀만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일이 내가 파는 상품에 다 영향을 미치는 거예요. 경쟁사와 담당한 상품만 본다면 1차원 적인 접근 밖에 못할 거라는 얘기를 주니어 MD들한테 많이 합니다.
*오지라퍼 : ‘오지랖’에 사람을 뜻하는 영어 접사 ‘-er’을 붙여 만든 신조어
훈 : 그래서 AI 시대에는 카테고리 매니저가 생존이 어려워질 수 밖에 없어요. 카테고리에 등록돼 있는 상품들은 알고리즘에 의해서 노출하고, 재고 발주 나가고 하면 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시장과 세상의 변수들을 판단해 ‘될 것 같은 상품’을 결정하는 관능의 영역은 기술로 대체가 불가능해요. MD 일을 오래 한 시니어 MD들은 그 특유의 감각이 있는거죠. 굉장히 정성적인 것인데요, 전공이나 지식만으로 가질 수 없고, 데이터화하기도 어려운 영역이죠.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역시나 소통 능력이이에요. 파트너사, 벤더사, 셰프 등 상품마다 이해관계자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든 ‘대화가 되는’ MD가 매우 중요하고요. 소통이 잘 되려면 ‘말발’이 아니라 정말 그 상품을 좋아하고 흠뻑 빠져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말이 술술 나옵니다. “이 MD는 정말 이 상품에 진심이네”를 상대방이 느끼면 인정하게 돼요.
Q. 감각도 기를 수 있을까요.
생 : 감각을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무언가로 많이 생각하지만 저는 후천적인 면이 훨씬 크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으면 계속 관여를 하고, 집중을 하게 되고, 몰입하다 보니 생기는 게 감각이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갑자기 생길 수는 없는 것이고, 지속적으로 여러 번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자신만의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훈 : 감각이라는 건 결국 확률이고, 이 확률은 대부분 가설을 바탕으로 하죠.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왠지 될 것 같은 그 느낌(웃음). 주니어가 세운 가설의 정확도와 시니어 또는 경영진의 가설의 정확도는 그래도 차이는 있을 거예요. 그 차이는 경험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고요. 경험의 차이라는 것은 능력의 차이도 당연 있겠지만 실패를 경험한 차이가 훨씬 큽니다. 사고를 많이 쳐 본 사람이 사고를 한 번도 안 쳐 본 사람 대비 확률적으로 사고 칠 가능성이 더 낮은 것이죠. 그런 맥락에서 많은 경험을 통해 실패를 많이 해 본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단 1% 포인트라도 더 높기는 합니다.
Q. 그렇게 감각을 기른 MD가 ‘잘하는’ 수준에서 ‘특출난’ 단계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훈 : MD는 상품에 대한 오너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상품의 모든 접점에서 MD가 관여되지 않은 영역이 없습니다. 마법사가 지팡이 휘두르듯 상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전 영역을 빠짐없이 챙겨야 하다 보니 결국 성실한 관리 없는 감각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죠.
아까 말씀 드렸듯이 감각은 확률이기 때문에 100%가 될 수 없지만, 성실함은 100%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성실함과 감각이 같이 섞이는 게 가장 좋지만, 감각이 좀 부족해도 성실하게 가다 보면 경험이 곧 감각이 될테니 결국 훌륭한 MD가 될 수 있는 거겠죠. 하지만 감각만 있고 성실하지 않으면 좋은 MD가 될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Q. ‘성실하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주관적인데요. 두 분의 기준은 어떠신가요.
훈 : 과거에는 엉덩이 붙이고 일하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 성실함의 척도였죠. 9 to 2(am) 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9 to 6(pm)로 일하는 사람보다 성실하다고 평가됐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옛 이야기인 것 같고요. 저는 성실함은 오너십과 거의 같은 의미라고 봐요. 예를 들어, A라는 상품을 내가 담당한다고 하면 10시간이 걸리든 10달이 걸리든, 내가 끝까지 해보겠다고 하는 그 생각 자체가 성실함이라 생각하거든요. ‘많은 시간을 공들여서 해야 된다’의 성실함이 아니라 오너십 기반으로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만약 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책임지고 a to z를 챙기겠다는 마인드가 성실함의 척도가 돼야 하는 것이죠.
생 : MD는 사실 엉덩이로 일하는 직무가 아니에요. 책상 앞에 오래 있는다고 성실한 게 아니죠. 열정을 가지고 이곳 저것을 쑤시고 다니며 새로운 걸 찾아다니는 태도가 오히려 저는 성실함이라고 보고요. 아까 재훈님이 ‘소통’ 말씀 주셨는데요, 파트너사와 전화 통화는 것만 몇 번 들어봐도 MD의 성실함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어요. 책상에 앉아서 검색해서 아는 정보로 파트너사와 얘기하는 것과 발로 뛰어 다니며 얻은 정보들로 파트너사 입장에 서서 소통하는 건 정말 천지 차이죠. 그건 감각의 영역은 아니에요, 성실함이죠. 감각이 MD의 직무를 절대 대변할 수 없는 이유예요.

예측 불가능한 ‘지수적 성장’ 원한다면
Q. 두 분과 얘기하다 보니 MD라는 직업이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쉽지 않구나 느껴집니다(웃음). 그냥 ‘존버’말고 건강한 방식으로 MD 일을 오래 하고 싶은 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생 : 제가 셰프 일 때랑 지금 MD 일을 할 때 비슷하게 느끼는 포인트 중 하나는, 소비자의 반응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거에요. 물론 혹평을 받을 때도 있지만, 내 노력에 대한 결과물을 직접 확인하는 데서 오는 성취감과 희열감은 정말 값지고요,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훈 : 지난 20여 년 이커머스 시장을 돌아보면, 최근 1-2년 안에 생긴 신생 회사 외에는 망한 회사가 별로 없어요. 근데 또 돈 버는 회사도 거의 없거든요. 도대체 망하는 회사도 없고 돈 잘 버는 회사도 없는 이 시장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죠. 시장은 그냥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거예요.
온라인 같이 점점 커지는 시장에 있다는 건 매우 가치 있는 일이고, 그 성장하는 시장에서 내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면 엄청난 매력이 있는 것이죠. 컬리에서 MD를 한다는 건 다른 곳보다 몇 배 더 힘들다는 거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그래프* 한 번 보세요. 평상시 100 안에서 오차 범위 5-10% 내에서 움직이던 판매량이 갑자기 3배 가까이 증가했죠. 내가 기획한 상품이 이런 지표를 한 번 찍으면, 그 MD는 틀림없이 캡처해 놓고 ‘내 마음 속에 저장’ 할거예요. 성장하는 시장, 그리고 즉각적인 시장의 피드백, 이건 정말 귀한 일입니다.
*높은 산처럼 우뚝 솟은 신상품 판매량 그래프 하나를 보여줬다.
Q. 현재 컬리에 있거나 혹은 컬리 MD를 희망하는 분들께 바라는 태도가 있으시다면 말씀 주세요.
훈 : MD들이 사고를 많이 쳤으면 좋겠어요. 철컹철컹 부정적인 사고 말고 건설적인 사고요(웃음). 위에서 말씀 드렸던 사례처럼, “이 상품 1년에 1,000만원 밖에 못 팔지만 저 이 상품 진짜 꼭 팔아봐야 합니다” 같은 거요. 제가 이 조직을 맡고 있는 한 그런 허용을 많이 해주고 싶어요. 사고를 치지 않으면 지수적 성장*은 불가능해요. 사고 방식을 자신의 바운더리(boundary) 밖으로 계속해서 넓히는 경험을 해봐야 감각을 기르고, 성공할 수 있는 감을 높일 수 있죠.
*지수적 성장(exponential growth) : 처음에는 완만하게 증가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치솟는 곡선 형태의 성장(J자형 커브). 직선 형태로 일정 기간마다 일정한 양이 더해지는 ‘선형적 성장(linear growth)’과 대비된다.
컬리도 어떻게 보면 ‘극신선을 내일 새벽까지 배달해 주겠다’는 사고를 친 거거든요. 솔직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말이 안되는 비즈니스잖아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이유, 가치를 믿고 계속 몰입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죠. 사고를 많이 치면 5년 정도 지난 어느 순간, 사고 친 레벨이 기본 베이스가 돼 있을거예요. MD들이 사고 쳐도 제가, 그리고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는 책임을 져준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사고라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해 주신다면요.
훈 : 고객을 얻는 방향으로의 사고요. 우리는 고객을 버는 것이지 매출을 버는 게 아니에요. 팔면 무조건 매출이 나는데 일회성인 상품들이 있어요. 팔수록 돈을 엄청 벌지만 고객에겐 가치가 없습니다. 컬리는 그건 “대출이지 매출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매출이 좀 안 나와도 고객을 얻는 사고를 쳐야 합니다.
생 : 저는 상품 관련 얘기를 할 때 제(리더의) 이야기라고 마냥 다 수용하는 게 좋지는 않더라고요. 자기 주장도 하고, 제 생각이랑 다르면 대립도 하고요. 전 그게 자기가 담당하는 상품에 대한 관심, 애정과 다 연결이 된다 생각해요. 상품 가지고 화도 내보고, 울어도 보고, 싸워도 보고, 그런 사람들이 결국 오래 MD 일을 하더라고요.

일하는 마음은 컬리인들의 커리어 인터뷰 콘텐츠 입니다. 컬리의 매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가짐과 원칙으로 일하고 있는지 들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