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에 엄격하다고 전달하는 방식 자체가 거칠 필요는 없죠. 엄격하면서도 부드럽게 표현할 줄 아는 문화가 일하기 좋은 문화라고 생각해요.”
허태영 최고운영책임자(Chief Operating Officer)
📍들어가기 전에
컬리에서 가장 큰 조직을 이끄는 허태영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만났습니다. 지난 5년간 구성원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요. 일하기 좋은 환경의 조건, 과연 뭘까요.
엔지니어 → 컨설턴트 → CEO. 컬리에 오기 전 그는 꽤 다양한 길을 거쳤습니다. 컬리에 와서야 각각의 배경과 역량이 연결되는 걸 경험했다고 합니다.
컬리는 물류를 100% 내재화한 몇 안 되는 이커머스 입니다. 허태영 COO 합류 후 5년만의 성과였죠. 그의 지난 경험과 그가 만든 조직 문화가 더 강한 운영 조직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들어봤습니다.
나는 어떤 가치를 만들고 있는가
Q.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해 전략 컨설팅을 거쳐 현재는 운영 조직을 맡고 계세요. 태영님의 커리어패스를 보니 ‘connecting the dots*’이란 표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각각의 서로 다른 점(dots)이 태영님의 커리어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나요.
*connecting the dots : 故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문 일부로 인생의 경험과 사건들을 점에 비유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과거의 점들을 되돌아보면 현재의 자신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의미.
의도적으로 연결한 적은 없어요. 대신 언제나 제가 재미있고 가슴 뛰는 일을 좇았던 것 같긴 해요. 처음에는 섬유공학과였어요. 당시 섬유공학과를 나오면 으레 가던 회사들이 있었는데, 섬유는 사양 산업이란 생각이 들어서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리튬 이온 전지 개발하는 쪽으로 지원해서 입사했어요. 그때 7명의 연구원으로 시작했던 회사가 지금 LG에너지솔루션이 된 거예요.
어느 시점이 되니 연구자의 길을 계속 갈 것인지 선택할 때가 오더라고요. 결국 가진 않았어요.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임팩트(impact)를 만들어야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인데, 연구 일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대신 제가 했던 건 고객사 영업. 당시 저희 고객사가 노키아, 모토로라, 소니였는데요. 어렸을 때 외국에 살아서 영어를 곧잘 했고, 영업도 재미있어하니까 회사에서 해외 출장을 계속 보내더라고요. 연구소 일보다 비즈니스랑 맞닿아 있는 일이 가슴을 더 뛰게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이후 유학을 가서 MBA 코스를 밟았고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어요. 컨설팅사에서 6년 정도 있다가 현실에 좀 더 도움을 주는 경험을 하고 싶어 일반 기업으로 이동했죠.
‘connecting the dots’이란 표현을 굳이 쓴다면, 컬리에 와서야 기존의 제 경험들이 연결됐다는 걸 느껴요. 사실 컬리에 합류할 때 물류를 잘 몰랐거든요. 하지만 공학적인 배경과 컨설팅사에서 배운 업무를 구조화하고 우선순위화 하는 법, 그리고 기업 경영을 하며 알게 된 현장과 조직의 중요성까지. 이 모든 걸 총체적으로 필요로 하는 게 물류 운영이더라고요.
Q.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주신다면요.
투입량 대비 얼마를 처리할 수 있고, 시간당 아웃풋은 어느 정도이며, 어떤 배차 동선이 가장 효율적인지 등 물류의 모든 과정이 공학적인 생각을 기반으로 결정돼요. 프로덕트 팀과도 협업을 많이 하는데요. 저도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긴 하지만, 공학적인 배경이 아예 없었다면 프로덕트를 이해하는 데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 같아요.
물류 운영에 걸쳐 있는 영역이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유기적으로 잘 돌아가게 하려면 구조화를 잘해서 핵심에만 집중해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물류는 결국 현장이잖아요. 만약 제가 컨설팅사에만 있었다면 현장의 실제 어려움과 고민을 잘 몰랐을 텐데, 일반 기업에서 시니어로 있었다 보니 실무자의 고충을 좀 더 잘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 세 가지가 종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컬리 운영 조직을 이끌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싶어요.
Q. 결과적으로는 컬리 합류가 잘한 결정이었지만, 당시에는 물류 조직을 운영한 경험도 없으셨고 선택에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컬리 합류를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뭐였나요.
저는 인생이든 업무든 발전하면서 얻는 보람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이에요. 컬리 바로 전 직장에서 대표이사를 맡았는데, 더 이상 발전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두 번째는 제가 있던 곳이 대기업이다 보니, 자리를 오래 유지하려면 조직에 좀 더 순응하는 사람이 돼야 할 것 같았어요. 근데 자신이 없더라고요. 저는 상대가 그 어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잘못 말씀하시면 솔직하게 그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내 의견이 받아 들여지지 않더라도 내 생각과 지식을 이야기하는 게 내 값어치를 하는 일이란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어요. ‘이 조직에서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내 존재 가치는 없다’는 생각이 매우 강한 거죠. 그런 답답함이 있던 찰나에 컬리에서 제안이 왔어요.
슬아님(김슬아 대표)을 만났을 때 매우 합리적이란 분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종훈님(컬리 CFO) 등 몇몇 초기 멤버들을 봤을 때도, 이 사람들이라면 정말 합리성 하나만 가지고 열린 토론 하면서 의사결정을 하겠다, 그리고 새로운 걸 같이 만들어 간다면 여기서 느끼는 보람은 엄청날 것 같다고 느꼈죠. 제안을 받고 거의 바로 합류를 결정했어요.
Q. 태영님 커리어에서 재미있었던 포인트가 근속연수였어요(웃음). 최소 3년, 6년 계신 곳도 꽤 있었고요. ‘내가 가치를 줄 수 있는 곳인가’를 판단하시고 조직에 머무르고, 또 떠나게 되는 순간을 결정하시는군요.
그렇죠. 내가 이 조직에 가치를 더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경영진이 생각하는 방향과 일치하는지 보죠. 돈이든 자리든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 하더라도, 철학적으로 나와 회사가 맞지 않는다면 저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 스스로 매일의 개선을 이뤄내야겠다”
Q. 컬리에서 가장 큰 운영 조직*을 맡고 계시죠.
네, 물류센터까지 하면 2천 명이 넘습니다. 물류와 배송, 고객서비스, 최근에는 환경, 보건 및 안전(EHS, Environmental, Health, and Safety)까지 맡고 있어요.
*컬리 운영 조직은 크게 4개 본부, 17개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4개 본부는 운영전략, FC기획, FC인사, FC운영(25.07.01 기준)
Q. 컬리는 물류를 완전 내재화*한 몇 안 되는 이커머스 중 하나입니다. 컬리처럼 물류를 품고 있는 조직의 특징이 있을까요.
*배송 인력과 배송 차량까지 직접 운영하며 주문부터 문 앞 배송까지 전 과정을 직접 통제한다.
내부에 물류가 없는 조직은 대부분 완전 외주거나 부분 내재화(일부 도급) 형태를 띄고 있어요. 이런 경우 서비스 수준을 높이거나 비용적인 부분을 개선하는 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러다 보니 물류 내재화 형태에 따라, 주어진 것을 매일 처리하는 것에 집중하는 조직과 개선 중심으로 움직이는 조직으로 갈리는 것 같아요.
컬리가 물류 내재화를 한 이유는 “우리 스스로 매일의 개선을 이뤄내야겠다”라는 차원이었어요. 운영 조직은 매일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하루하루 어떤 개선을 이루어낼까 고민하는 에너지 넘치는 조직이에요.
Q. 물류 운영의 핵심은 뭘까요. “컬리 물류는 다르다”라고 평가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기준은 되게 단순해요. 효율성과 퀄리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면 물류 경쟁력이 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아요. 효율을 강조하다 보면 퀄리티를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는데요, 컬리의 브랜드 가치를 고려했을 때 고객한테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 수준은 절대적으로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죠. 컬리는 지연, 파손 등 모든 부분에서 타사보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물류 배송 품질을 준수하면서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하느냐가 결국 컬리 물류를 다르게 만드는 지점인 것 같아요.
컬리는 신선식품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검품 단계부터 고려해야 하는 프로세스들이 많아요. 공산품 위주의 배송을 하는 곳 대비 비효율이 더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 비효율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게 컬리 물류의 경쟁력이라 생각해요. 배송 또한 동선 최적화나 인력 배치 등 많은 부분을 데이터화해서 시스템을 통해 운영하고 있어요.
Q. 자동화도 물류 효율화에 한몫할까요.
저는 항상 ‘선택적 자동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100% 자동화만이 답이 아니에요. 자동화를 ‘선택적’으로 하려면,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영역과 기계가 잘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있어야 해요. 자동화가 트렌드라서 마냥 좋다는 생각으로, 사람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영역을 로봇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효율은 영원히 나올 수가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죠.
Q. 컬리에 합류하시고 운영 조직의 스케일업과 효율화를 모두 성공적으로 이끄셨어요. 축구로 치면 공격과 수비를 모두 잘해야 하는 상황에서 구성원들이 힘들어하진 않았나요.
저는 효율화와 스케일업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마 저희 구성원들도 두 개가 일치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스케일업은 원칙을 만들고 업무가 정형화 된 상태에서 시스템적으로 뒷받침됐을 때 가능해요. 최적의 프로세스가 정착되지 않으면 스케일업도 불가능하죠.
예를 들면, 옷장 정리를 하는데 옷이 정리가 안 된 상태로 10개가 한 옷장에 들어간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 옷을 100벌 산다면 옷장이 10개가 필요하겠죠. 그러면 방 안에 공간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결국 한 옷장에 10벌만 들어가는 옷장 1개의 효율을 개선해서 100벌을 넣을 수 있어야, 나중에 500벌이 들어온다고 해도 옷장 5개로 해결이 가능한 상태가 되겠죠. 그래서 효율화는 스케일업의 일부인 것이죠. 효율화에 집중하니 스케일업이 더 쉬워진 것이지 효율화 따로 스케일업 따로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Q. 태영님이 합류했던 2020년은 이미 코로나가 시작되고 온라인 주문량이 엄청나게 증가했을 때인데요. 효율화를 다지고 스케일업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을 것 같아요.
어려웠죠. 코로나 초창기에는 수요가 넘쳐났기 때문에 수도권 물량 처리하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때는 효율화보다는 ‘정형화’에 집중했다는 말이 오히려 더 맞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오늘 5만 건의 물량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걸 처리하기 위해서 피킹& 패킹* 인원을 얼마나 불러야 할지조차 정확히 모르는 거예요. 늘어난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서 적어도 사람이 얼마나 필요한지 파악할 수준의 데이터만 모아보자고 합의했고, 어제 인원을 몇 명 불렀는지부터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과거에는 누군가의 감과 경험에 의존해 돌아가던 물류가, 데이터가 조금씩 쌓이면서 내일의 물류를 예측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바뀌어 갔어요. 그런 프로세스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효율화를 생각할 여유가 생긴 것이죠.
*피킹(Picking)&패킹(Packing) : 물류 처리 과정에서 상품을 취급하는 두 가지 주요 단계. 피킹은 주문된 상품을 창고에서 찾아내는 과정을 의미하며, 패킹은 피킹된 상품을 고객에게 안전하게 배송하기 위해 포장하는 과정을 의미.
구성원이 리더와 같은 생각을 하게 하려면
Q. 태영님 커리어의 굵은 뿌리를 형성하는 것 중 하나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략적’이라는 건 뭘까요. 태영님만의 전략 프레임워크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전략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맥킨지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전략이 뭔가 거창한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프레임워크 같은 건 사실 없어요. 대신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란 말을 되게 좋아하는 편인데요, A를 택하면 B를 희생할 건지, B를 선택해서 A를 희생할 건지에 대한 판단이 전략이라고는 생각해요. 매 순간 트레이드 오프(trade-off)를 생각해서 의사결정을 한다면, ‘전략적’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많은 리더가 A도 원하고, B도 원하고, 어떨 때는 C도 원해요. 욕심을 부리죠. 저는 세상에 A,B,C를 모두 만족 시키는 선택 같은 건 절대 없다고 생각해요. A,B,C 중 뭔가를 희생해야 하는데, 뭘 희생할지에 대한 판단을 잘하는 게 좋은 리더거든요. 그리고 리더가 뭘 선택하고 뭘 포기할 것인지, 구성원들에게 명확하고 반복적으로 전달하면 구성원들이 리더와 비슷한 생각을 하기 시작해요. 요새 저희 물류 조직을 보면 ‘내가 이제 필요 없나?(웃음)’ 싶을 정도로 저랑 비슷한 생각과 기준으로 판단하더라고요. 우리 조직이 했던 수많은 의사 결정 속에서 어떤 걸 포기하고 어떤 걸 택하는지 이제 학습이 된 거예요.
Q. 자신이 내린 결정의 이유를 명확하고 일관되게 전달하는 리더를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에요. 리더들이 그것만 잘해줘도 실무자들은 훨씬 더 일하기 수월할 텐데요.
되게 중요한 얘기에요. 저는 리더가 일관성을 보이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만약 리더가 일관성이 없다면 그건 원칙이 없어서일 거예요. 저도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다 보니 원칙을 정해두지 않고 나중에 결과만 보면 헷갈리거든요. 리더가 충분히 고민해서 원칙을 세웠으면 일관성이 없을 수는 없겠죠.
제가 맨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시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밀크티를 시켜 달라고 하면 주문하는 상대가 혼란스러울 거예요. 근데 예를 들어서, 기온이 30도를 넘어가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20-25도 사이면 밀크티를 부탁한다고 원칙을 세워뒀다면요? 어느 날 기온이 20-25인데 제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원칙에 반한다”라고 반박할 수 있잖아요. 그럼 저는 “제가 잘못했다”며, “최근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습도’라는 요소를 하나 더 추가해서 원칙을 보강해 보자”고 할 수 있겠죠.
리더의 일관성 없는 결정에 대해 “잘못 결정하시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오디언스는 구성원이에요. 근데 한국 문화 특성상 구성원들이 리더한테 그런 얘기를 잘 못하잖아요. 그래서 리더는 외로운 존재고, 원칙이라는 게 더욱 있어야 하는 것이죠. 의사 결정을 하는 기준점이 있어야 리더도 스스로 결정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Q. 리더가 원칙을 잘 세우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원칙에 반하는 결정을 했을 때 구성원들이 솔직하게 의견을 내뱉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두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맞아요. 리더는 구성원 한 명한테 말하지만 그 사람한테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거든요. 그걸 지켜보는 모든 구성원에게 다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저는 리더가 되게 예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시 밀크티 예를 들면, “밀크티로 다 통일하시죠” 얘기하고 그냥 주문하는 리더가 있고, 주문하기 전에 구성원 얼굴 한 번 쓱 보는 리더가 있어요. 저는 후자가 좋은 리더의 자질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보통 리더가 ‘밀크티 통일’이라고 하면 아무도 말 안 해요. 근데 개중에 멈칫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구성원들 표정 알아차리고 “다른 거 드실래요?” 물어보면, “저 혹시 카페인 안 들어가는 것 먹어도 될까요?”라고 해요. 리더는 그렇게 구성원들한테 계속 물어보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자꾸 하게 만들어서 피드백을 받아야 해요. 앉아서 구성원들이 피드백 주길 바라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어보는 리더와 그렇지 않은 리더는 굉장히 다른 길을 갈 소지가 높습니다.
Q. 리더가 굉장히 빨리 되셨어요.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이 겪으셨을 텐데요. 리더가 막 됐을 때랑 지금의 리더 허태영을 비교하면 어떤 부분이 가장 많이 달라졌나요.
그때는 혼자 잘났었고 지금은 함께 일하는 법을 알게 된 게 가장 큰 차이예요. 젊었을 때는 일 잘한다는 소리 좀 듣고 빨리 승진하면 엄청 잘난 줄 알잖아요. 저도 그랬어요(웃음). 저 잘난 맛에 주변도 신경 안 쓰고, 시야가 되게 좁은 팀장이었죠.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일하는 거 하나만 신경 썼던 것 같은데, 사실 회사가 그걸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잖아요. 유관부서는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지, 인프라적인 어려움은 뭐가 있는지, 구성원들 동기부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종합적으로 살피고 고려해야 조직이 운영되죠. 지금은 그때보다는 더 넓게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의사 결정 하나 하더라도 과거에는 이게 맞고 틀린 지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은 설령 맞다고 하더라도 같이 움직여야 하는 다른 요소들은 어떤 영향을 받는지 한 번 더 생각하고 고민을 많이 해요.
Q. 태영님의 자리는 결국 결정하고 판단하는 자리지만, 언제나 100% 확신을 가지고 결정하시는 건 아닐 텐데요. 그런 불확실함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시나요.
저는 저보다 실무자들이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해서 의견은 항상 밑으로 물어봐요. 경험은 저보다 적을 수 있지만, 자기가 보는 관점에서 적어도 하나씩의 밸류(value)는 가지고 있거든요. 저는 그 벨류들을 모아서 종합적으로 가장 좋은 게 뭔지 판단하면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리더는 어느 순간엔 의사 결정을 할 줄 알아야 해요. 의사 결정을 한다는 건 곧 책임을 진다는 말이죠. 근데 리더가 결과가 두려우면 의사 결정을 잘 못해요. 의사 결정을 하려면 여러 요인의 상호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하는 데 그 관계를 파악하는 것도 힘들고, 최고의 결과를 만드는 조합을 찾는 것도 어렵죠. 좋은 리더는 그럼에도 책임지고 의사 결정을 하지만, 그렇다고 100% 확신을 가지고 결정하는 경우는 잘 없어요. 하지만 결정을 해줘야만 실무자들이 움직일 수 있잖아요. 저의 경우 의사 결정할 수 있는 70% 수준의 옵션을 갖고 오면 최대한 결정을 내리려고 노력해요. 그때부터는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죠.
원칙은 엄격하게, 표현은 부드럽게
Q. 운영 조직의 문화는 어떤가요. 지난 5년간 운영 조직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특별히 하신 노력이 있다면요.
구성원이 쓸데없는 고민 하지 않고,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Q. 쓸데없는 고민은 어떤 고민일까요.
물류는 데일리 퍼포먼스(daily performance)인데, 결과만 놓고 챌린지하면 실무자는 불필요한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물류에서는 오늘 하루 몇 명의 인원을 확보해서 주문 처리를 하느냐가 매우 중요해요. 매일 수시로 변하는 수요를 예측하면서 어떻게 인원을 확보할 지 원칙을 정해주는 일이 필요하죠. “오전 예측을 보고 필요한 인원의 절반만 부르고, 오후 예측을 보고 나서 나머지 인원을 추가로 확보할 지 말지를 정하자” 같은 게 하나의 원칙이 될 수 있어요.
실무자가 원칙을 지켰다면 결과가 잘못 나왔다 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해요. 제가 중요시하는 건 그 시점에 우리가 합의한 원칙을 지켰냐 안 지켰냐 뿐이죠.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구성원들은 자신의 업무에서 뭘 중점적으로 보고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하는지 점점 더 명확하게 알게 돼요. 원칙을 정하고 원칙에 기반해서 일하는 게 제가 생각하는 일하기 좋은 환경이에요.
리더가 결과만 놓고 챌린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야 구성원들이 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성원들은 매일 그 일을 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많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아이디어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문화를 만드는 게 너무 중요한데, 아이디어가 사장 되는 경우는 두 가지죠. 첫째는 실패했을 때 리더가 질책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애써 제안한 아이디어가 자기 업무 부담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아이디어를 용기 내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질문하고 공론화하는 것, 시도를 했을 때 “성공 하면 네 덕, 실패하면 내(리더) 책임”이란 메시지를 리더가 계속해서 주는 것이 중요해요. 물론 실제 행동도 일치해야 하고요. 그래서 전 시도를 독려하고,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것이 업무 부담이 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조율하는 작업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구성원들이 무언가를 시도하고 제안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되게 기특하잖아요. 결과가 좋으면 당연히 크게 칭찬하지만, 시도 하는 것 자체도 칭찬을 많이 하려고 했죠. 결과가 나쁘다고 왜 이런 식으로 했냐며 질책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런 노력이 5년 동안 지속되면서 속도는 다소 느릴지라도 많은 개선을 저희 스스로 이뤄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Q. 실무자 관점에서 정말 이상적인 리더시네요(웃음). 제일 필요한 두 가지를 하도록 해주시니까요.
제가 주니어일 때 윗사람들을 보며 답답하고 부당하다고 느낀 부분들이 있었거든요. ‘어떤 리더가 일을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리더일까?’ 그때부터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구성원의 시도를 장려하려면 리더는 용기가 있어야 해요. 어떤 시도를 하게 했고, 그게 실패했을 때 구성원 대신 책임질 용기가 있어야 하죠. 결과가 잘못 나오면 리더도 사람인지라 겁이 나요. 근데 나도 나지만 리더가 책임지지 않으면 시도하라고 해서 한 구성원은 뭐가 될까요.
실제로 전 직장에서, 제가 지시한 보고서를 팀이 만들어서 부회장님한테 보고를 하는데 부회장님이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드셨던 일이 있었어요. 소리를 지르면서 팀원을 질책하는데 저도 솔직히 좀 당황스럽더라고요. 미팅 중간에 이렇게 말씀 드렸어요. “부회장님 잠시만요, 이거 제가 시킨 거예요. 제가 잘못 판단했으니 제 책임입니다.” 라고요. 몇 년 지난 후에 그 팀원이 다른 동료한테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나는 그때 그분이 우리를 방어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계속 믿고 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고요. 리더가 그렇게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시도해요. ‘실패해도 우리 리더는 막아준다’라는 믿음이 생기면 무슨 시도를 못 하겠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 팀이 비판받는 상황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끼어들어요. 내가 침묵하는 순간 비겁한 리더가 되는 거라고 스스로 많이 생각합니다.
Q. 말씀하신 것들을 종합해 보면 굉장히 섬세하고 세심한 리더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또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되게 엄해요. 하지만 그걸 전달하는 방식 자체는 거칠 필요가 없죠. ‘엄격하면 거칠어야 한다’라는 방정식은 성립하지 않아요. 원칙에 엄격하면서도 부드러울 수 있어요. 저는 엄격하면서도 부드러운 상호작용(interaction)이 있는 문화가 일하기 좋은 문화라고 생각해서 항상 부드럽게 얘기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기는 해요. 하지만 원칙을 위배했을 때는 정말 냉정하게 뭐라고 합니다.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에 예외를 둘 순 없죠.
100m를 10초 안에 뛰고 있다 하더라도
Q. 원칙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요. 컬리 전체로 확장하면 핵심 가치와 연결이 될 거예요. 운영 조직에서 특히 중요시하는 가치가 있을까요.
1순위는 지속가능성, 2순위는 집념인 것 같아요. 옛날 송파센터* 시절에는 물량을 많이 처리하려면 사람들이 땀 흘리면서 계속 뛰어다녀야 했어요. 그건 지속 가능한 방식이 아니죠.
*하남에 이은 컬리의 두 번째 물류센터로 2024년 클로징했다.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가 시장에서는 보통 환경적인 측면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저는 좀 더 업무 관점에서 지속가능성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일의 원칙을 명확히 정립하지 않으면 일정 수준의 성과를 계속해서 내기 힘들어요. 물류나 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험 요소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이 있어야 하죠.
지속 가능한 업무 환경을 만들려면 고민을 정말 많이 해야 하고 또 일정 기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두 번째 필요한 가치가 집념인 것이죠. 어떻게 보면 매일 반복되는 물류라는 업무 안에서 지속 가능한 개선을 위해 새로운 것을 도출해 내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집념 있게 고민하고 추진하고, 또 실패하고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는 이런 과정을 반복해야, 그중 하나가 효율성이란 열매로 맺어지는 것 같아요.
Q. 운영 조직에서 일 잘하는 사람들은 어떤 공통점을 가졌나요.
일 잘하는 사람이 일단 되게 많고요(웃음). 가장 중요한 특징은 열려있는 마음이요. 일 잘하는 사람은 자기만의 고집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을 했는데 누가 그거 아니라고 피드백 주면 방어적으로 되기 쉽죠. 근데 일을 ‘정말’ 잘하는 사람들은 외부 피드백에 굉장히 열려 있더라고요. 이미 자신은 100m를 10초 안에 뛰고 있는데, “자세를 15도 정도만 앞으로 기울이면 2초는 더 단축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피드백을 받았다고 가정해 볼게요. 여기서 “나 이미 10초 만에 뛰는데 왜 끼어들지?”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는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잘 못하는 것 같고, “일리 있는 조언인데 그럼 한 5도 정도라도 기울여볼까?”라고 수용하는 사람들은 일을 정말 잘하더라고요.
두 번째는 거침없는 사람이요. 외부 자극에 열려 있어도 의견을 낼 때, ‘내가 이래도 되나?’, ‘상사가 싫어하지는 않을까?’ 또는 ‘저쪽 부서에서 뭐라 하지 않을까?’ 너무 많은 것들을 신경 쓰고 눈치 보는 사람은 새로운 시도를 잘 못해요. 그런 것에 구속 받지 않는 사람은 그냥 아이디어를 내죠.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면 한번 해보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결국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가져오더라고요.
Q. 면접 보실 때도 그런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보시나요.
네, 일 잘하는 사람의 특징과 거의 연결돼 있긴 해요. 자기 확신이 지나치지 않는지,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그러나 겸손하게 얘기하는지 주로 봐요. 자기주장이 있으면서도 겸손한 사람들은 대부분 안타 2루타 이상은 꾸준히 치거든요.
Q. 면접에서 자기주장 펼치기가 현실적으로 좀 힘들지 않나요.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한다기보다는 어떤 요소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자기 생각을 풀어내는 사람인지를 보는 거죠. 예를 들면, “서울 집값이 어떻게 될 것 같아요?”라고 질문 했을 때 “뉴스 보니 올라갈 것 같던데요” 혹은 “내려갈 것 같은데요.”라고 답하는 사람보다는 “부동산이 제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이러저러해서 어떻게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낫다는 거죠. 그 가설이 설령 틀렸다고 하더라도 자기만의 사고 과정(thinking process)을 거치고 깊이 생각하는 버릇이 돼 있다는 것일 테니까요.
Q. 마지막 질문드릴게요. 앞으로 운영 조직의 문화를 어떻게 끌어 나가고 싶으신가요.
일단 시도하는 사람이 박수받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그다음에는 원칙은 엄격하게 준수하지만 상호 간 배려가 넘치는 조직이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노력도 서로 칭찬할 수 있는 구성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으면 해요. 운영 조직에 어느 정도 그런 문화가 있긴 하지만 계속 유지가 됐으면 좋겠어요.
일하는 마음은 컬리인들의 커리어 인터뷰 콘텐츠 입니다. 컬리의 매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가짐과 원칙으로 일하고 있는지 들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