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의 일하는 마음] 질문하세요. 스스로에게도, 상사에게도. 

2025.12.30

"세상에 원래 그런 것과 당연한 것은 '빛의 속도'밖에 없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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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전에

  1. 20년 넘게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일을 해왔다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컬리 CEO STAFF 조직 전략 담당 김지현님을 만났습니다. 서비스를 설계하는 '기획자'에서 컬리의 그레이 영역을 메우는 '전략가'로 외연을 넓히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어왔을까요. 
  2. 본질의 언어로 통역하는 노하우부터, 상사와의 소통에서 '헛발질'을 멈추는 질문의 기술까지. CEO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싱크를 맞추며 조직 사이의 '쿠션' 역할을 하는 지현님만의 소통 실마리도 전합니다
  3. 직급이나 직책보다는 후배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주는 '오래된 미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데요. 부끄럽지 않은 궤적을 남기는 지현님의 커리어 여정을 따라가 봅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의 선을 긋는 사람 

Q. 처음 인터뷰 섭외차 연락드렸을 때, 본인을 '아무 일이나 다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셨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스스로 정의하는 지현님의 커리어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IT 업계에서 기획자, 혹은 지금은 PM(Project Manager)이라 불리는 이 업무를 한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네이버나 다음 같은 1세대 벤처 기업들이 막 자리를 잡던 시기였어요. 당시엔 직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어서 기획자가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를 설계 하기도 하고, 마케팅이나 사업 전략을 짜는 일이 부지기수였죠.

그런 시기를 거치며 제가 내린 업의 정의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끊임없이 발견해서, 그것을 ‘어떻게든’ 해결하는 사람이란 거예요. 세월이 흐르며 프로젝트 리딩, 전략 수립 등으로 기획자의 업무가 세분화되었지만, 결국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내 해결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어요.

과거에는 제가 만든 프로덕트가 외부 고객(B2C)에게 직접 닿는 재미로 일했다면, 지금은 그 대상이 우리 직원들, 즉 '내부 고객'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기획자를 '프로덕트 오너(PO)'나 '미니 CEO'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리의 의사결정에 따라 수많은 유관 부서의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일 거예요. 제 역할은 명확한 방향 설정을 통해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소위 말하는 '삽질'을 하지 않게 돕는 것입니다. 작은 서비스의 문제를 푸는 데서 시작해, 이제는 회사 전체의 조직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문제를 발굴하는 단계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Q. 문제 해결의 범위가 특정 프로덕트에 국한되지 않고, 일하는 방식이나 문화로까지 확장된 것이라 봐도 될까요. 

네. 예를 들어 이번 여름, 전사적으로 JPD(Jira Product Development) 시스템을 도입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에요. 그냥 새로운 툴을 하나 더 쓰는 게 아니라, 우리 회사의 모든 업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그 히스토리를 어떻게 공유하며 협업할지 설계하는 과정이었거든요. 별도의 회의나 보고서 없이도 다음 스텝을 예측할 수 있도록요. 인사(HR)팀에서 다루는 조직 문화와는 결이 조금 다른 일인데요. 이건 단순한 시스템 도입을 넘어 회사 전체의 업무 프로세스와 문화를 바꾸는 일이기도 해요.

본질을 따져보면 결국 이것도 저에게는 하나의 '고객 프로젝트' 입니다. 우리 구성원들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 본질적인 목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까요.

Q. 조직도 상 지현님의 소속은 'CEO STAFF' 전략 담당입니다. 흔히 대기업의 비서실이나 전략실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운데요. 지현님이 생각하는 CEO STAFF는 구체적으로 어떤 미션을 수행하는 곳인가요

사실 '전략'이라는 이름이 붙은 조직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저 역시 제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해서 구체화해 나가는 과정에 있고요. 다만 명확한 건, 제가 하는 일이 거창한 비전을 새로 짜거나 화려한 전략 문구를 만드는 일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회사의 큰 방향과 비전은 이미 우리 경영진이 충분히 잘 세워주고 계시니까요.

보통 큰 회사의 전략 조직은 데스크 리서치를 바탕으로 비전이나 사업 계획서를 만드는 데 집중하곤 합니다. 때로는 현장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에 그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컬리는 경영진부터 실무자까지 모두가 땅에 발을 딱 딛고, 전략을 어떻게 현실로 구현할지 촘촘하게 쌓아 올리는 곳이에요.

그래서 제가 집중하는 지점은 전략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그레이 영역(Grey Area)' 입니다. 각 부서가 눈앞의 목표를 향해 달리다 보면, 어느 부서가 맡기에도 모호하거나 부서 사이의 빈 공간에 놓이는 일들이 필연적으로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저는 그 사이에서 각자의 언어를 통역하고 '이 일을 어떤 조직에서 수행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까?'를 고민하며 그 빈 공간을 메우는 역할을 합니다. 전략이 구호로만 남지 않고 현장에서 잘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거죠. 

Q. 저는 지현님이 조금 더 신사업 전략에 집중된 역할을 하실 거라 예상했어요. 이를테면 상위 기획을 수립하고 실행단에 뿌려주는 형태처럼요. 그런 역할도 겸하고 계신가요.

물론 신규 사업을 검토할 때 전반적인 시장 상황을 리서치하거나, 전략 수립을 위한 백데이터를 구축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업계 트렌드를 분석하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필요한 유의미한 정보들을 보고하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외부 컨설팅 펌에 의뢰하기도 했던 영역들을 제가 내재화해서 수행하고 있는 셈이죠. 

하지만 제가 "우리의 신사업은 이 방향이어야 하고, 이렇게 실행하세요"라고 지시하는 역할을 하는 건 아니에요. 컬리에는 이미 사업과 물류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가진 조직장분들이 계시니까요. 제 역할은 전문가들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에 가깝습니다. 워낙 바쁘게 현장을 챙기시는 분들이라, 미처 살피지 못할 수 있는 외부의 시각이나 객관적인 데이터들을 정리해 전달해 드리는 거죠. 결국 제가 하는 일은 그게 신사업이든 뭐든 '우리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를 관찰하고, 그에 맞는 해결 방안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현재 팀원 없이 단독으로 움직이며 프로젝트별로 유관 부서와 협업하고 계신데요. 최근 트렌드인 '모듈형 워커'의 전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소속 팀 없이 독립적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해요. 팀원이 한 명인 구조가 조금 독특해 보일 순 있지만, 본질은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역할을 해야 우리 팀(혹은 우리 회사)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지 판단하고 움직이는 것. 그 유연함만 있다면 누구나 어디서든 제 몫을 해내는 모듈형 인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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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속도 외에 당연한 건 없다

Q. 2021년 커머스 프로덕트 기획 그룹장으로 합류하셨다가, 2024년부터 'CEO STAFF'로 자리를 옮기셨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먼저 '손을 들고' 찾아갔습니다(웃음). 당시 조직 개편으로 슬아님(김슬아 대표)이 프로덕트 조직(기획·개발)을 직접 챙기셔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현업 조직장분들이 워낙 잘해주고 계셨지만, 경영진 차원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이 업무가 어떤 맥락과 히스토리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짚어줄 '스태프'의 역할이 꼭 필요했었죠.

마침 제가 있던 그룹은 저 없이도 자생적으로 잘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안정화된 상태였고, 슬아님에게는 저 같은 파트너가 필요한 시점이었어요. 카카오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에 제가 가장 잘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면담을 신청했고, 기쁘게 제안을 받아주셔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Q. 슬아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합을 맞추는 일인데, 두 분의 싱크를 맞추는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다행히 슬아님과는 일면식이 없던 사이가 아니었어요. 프로덕트 조직에 있을 때부터 컬리의 큰 과제들을 함께 풀었거든요. 외부 시스템에 의존하던 커머스 시스템을 내재화하고, 상품 체계 전체를 리빌딩하는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거치며 실무적으로 깊게 소통해 왔죠. 이미 서로의 일하는 방식과 컬리의 핵심 시스템이 어떻게 구축되었는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스태프 조직으로 옮긴 후에도 합을 맞추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Q. 사용자의 불편을 해결하는 기획자와 전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가, 두 가지 업을 모두 경험해 보니 어떤 차이점이 있던가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결과물을 제 손으로 직접 완성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기획자 시절에는 제 머릿속 구상을 문서로 옮기고, 디자인과 코딩, QA를 거쳐 고객에게 론칭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제 손으로 직접 챙겼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그 실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Q. 프로덕트를 직접 론칭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으신가요.

전혀요(웃음). 오히려 지금은 '이 문제가 왜 발생했을까?'를 더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얻어 좋아요. 기획자로 일하다 보면 때로는 본질을 고민하기보다 당장 닥친 업무(Task)를 처리하는 데 급급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조직의 업무를 들여다보는 지금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수동 운영이 많아 불편하다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 예전 같으면 기능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겠지만 지금은 아예 다른 지점을 건드려 봅니다.

수면 위로 드러난 현상만 고치는 게 아니라, 뿌리 깊은 원인을 찾아내 아예 판을 새로 짜는 거죠. 이렇게 찾아낸 본질적인 인사이트를 제품 조직에 잘 전달하고, 조직 간의 조율을 거쳐 훨씬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을 볼 때 큰 즐거움을 느낍니다.

Q. 문제의 본질을 찾기 위해 고수하는 지현님만의 방법도 있을까요. 

늘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편이에요. "이게 정말 진짜 문제인가? 이걸 해결하면 누가 행복해질까?" 누구나 자기에게 닥친 일이 가장 괴롭기 때문에, 개선 요청을 할 때도 자신의 불편함을 1순위로 두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제3자의 시선으로 보면 100명의 괴로움을 해결할 진짜 핵심 문제는 3~4순위에 밀려있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저는 문제라고 가져오시는 것들을 한 번 더 파헤쳐 봅니다.

제가 동료들에게 종종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다"는 거예요. 스페인 어느 부대에서 병사들이 아무도 앉지 못하게 빈 벤치를 대대로 지켰는데, 알고 보니 수십 년 전 페인트칠을 했을 때 '마를 때까지 앉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이 수정 없이 내려온 결과였다는 일화가 있죠. 서비스든 내부 업무든, 이유도 모른 채 관성적으로 하는 일들이 정말 많아요.

Q.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에 "왜?"라고 묻는 건 사실 조직 입장에서 꽤 불편한 일일 수도 있을 텐데요.

맞아요. 그게 CEO 스태프 같은 조직이 필요한 이유겠죠. 대표님이 직접 "이거 왜 그런 거예요?"라고 물으면 실무자는 '내가 뭘 잘못했나' 하고 위축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제가 물으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나 보다" 하고 조금 더 편하게 답해주시죠. 조직 사이에서 일종의 '쿠션' 역할을 하는 거예요. 

세상에 원래 그런 것과 당연한 것은 '빛의 속도'밖에 없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대신 문제를 인지했다고 해서 당장 다 건드리지는 않습니다. 지금 해결할 수 없는 건 인지한 채로 놔두는 게 방법일 때도 있죠. 다만,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히 알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 그 '질문의 시작'을 만드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문제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저는 직접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권자는 아니에요. 결정권자가 가장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기 때문에, 우선순위는 회사가 처한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합니다.

어떤 시기에는 이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장의 번거로움을 감내하며 달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괴로움이 '임계점'에 다다를 때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운영자분들의 수작업 비중이 너무 높아져서 더 이상은 효율을 낼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그때는 내부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가 높은 과제가 되는 것이죠.

결국 절대적인 우선순위란 없습니다. 지금 우리 회사가 어디에 서 있는지, 구성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어디까지인지를 면밀히 살피며 그때그때 가장 필요한 결정을 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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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속에 숨겨진 '진짜 의도'를 읽는 법

Q. 인터뷰 초반에 각 부서의 '언어를 통역하는 일'을 언급해 주셨어요. 과거엔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주로 조율했다면, 지금은 경영진과 실무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계신데요. 서로 다른 양쪽의 언어를 통역하고 설득하는 지현님만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사실 경영진이나 실무자나 목표는 같습니다. 다만 상위 결정권자일수록 전사적인 관점에서 본질적인 이슈를 반복해서 강조하게 되는데, 이때 전달 방식에서 오해가 생기곤 합니다. CEO가 메시지의 이해를 돕기 위해 특정 '사례'를 들면, 그 무게감 때문에 실무진은 본질보다 그 사례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저는 그 사이에서 '진짜 목적'을 캐치해 다시 들려주는 일을 많이 합니다. CEO의 말이 본래 의도와 다르게 와전되지 않도록, "이 사례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본질은 이것입니다"라고 부연 설명하며 맥락을 바로잡는 것이죠. 한국어를 영어로 바꾼다고 해서 내용이 달라지지 않듯, 저의 통역 역시 핵심은 그대로 두되 전달의 방식만 매끄럽게 다듬는 과정입니다.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모두 결국은 똑똑한 전문가들이에요. 각자의 언어가 달라 부딪히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가 가려는 본질적인 가치와 목표(Goal)를 다시 되짚어주면 결국 자신들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걸 스스로 깨달아요. 저에게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기 보다는, 그 목표가 흐려지지 않도록 가급적 단순화해서 전달하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지 않게 기록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모두를 다시 정렬시키는 것이죠. 

Q. 많은 직장인이 상사와 소통하며 '방향이 틀렸다'는 피드백에 좌절하곤 합니다. 슬아님과 가장 가까이서 소통하는 지현님이 보시기에, 건강한 소통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핵심은 '맥락(Context)'을 잘 읽는 것입니다. 여기서 맥락이란 상사의 기분을 맞추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우리가 같이 합을 맞춰 달성하려는 '공통의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죠. 상사가 이 조직과 저 조직에 각기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기저에 깔린 본질은 결국 하나의 목표로 향해 있습니다. 단편적인 지시 사항 하나에만 매몰되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왜 이 이야기를 하실까'를 귀담아듣다 보면 맥락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Q. '왜 저 이야기를 하실까' 혼자 고민하다가 잘못 해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통한 싱크업(Sync-up)'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 생각이 상사의 목표와 잘 맞닿아 있는지 계속 확인해야 해요.

Q. 상사에게 질문을 계속 하는 것은 K직장인에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웃음).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절이나 부정적인 답이 무서워 질문하지 않으면 결국 '헛발질'이 시작됩니다. 저는 요즘 생성형 AI를 비서처럼 두고 일하는데, 제가 질문을 잘해야 AI도 답을 잘해줍니다. 상사와의 소통도 마찬가지예요. 질문하지 않으면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영영 알 수 없습니다.

합리적인 질문을 던졌을 때 "이런 걸 왜 물어봐?"라고 할 컬리의 리더들은 제가 알고 있는 한 없습니다. 질문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맞추는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Q. 현업 실무자들과 과제를 조율할 때 갈등이 생기진 않나요? 다양한 부서와 소통을 하실텐데, 현장과의 간극은 어떻게 좁히시는지 궁금합니다.

갈등이라기보다 이해를 하는 과정이 많습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저게 왜 힘들지?' 싶었던 일들도, 직접 가서 이야기를 듣고 업무 방식을 들여다보면 그분들만의 고충이 이해되거든요. '왜 이렇게 힘들게 일할 수밖에 없었나'를 파헤치다 보면 우리가 정말 해결해야 할 지점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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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가  

Q. 얼마 전에 컬리 입사 4주년을 맞으셨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이 문제는 정말치열하게 고민해서 해결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특별히 어떤 하나를 꼽기보다, 매 순간 당면한 과제에 최선을 다하며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하루하루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특별히 "이건 하지 말았어야 해"라고 후회하거나, 반대로 "이건 정말 기가 막히게 잘했다"고 칭찬할 만한 일도 없고요.  

4년 전 컬리에 합류했을 때, 코로나19로 사업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던 시기였어요. 당시의 미션은 파편화되어 있던 프로덕트 조직의 체계를 잡고, 외부 시스템에 의존하던 커머스 시스템을 빠르게 내재화하는 것이었죠.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절박한 과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다 보니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4년 동안 단 한 번도 똑같은 일을 반복해 본 적은 없었어요. 

Q. 한 번도 같은 일을 반복한 적이 없다는 건, 늘 새로운 난관을 마주했다는 뜻이기도 한데요. 지치거나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오히려 저는 조직이 너무 안정되어 어제 하던 일을 오늘 똑같이 반복하게 되는 상황을 경계하는 편이에요. 네이버와 카카오를 거치며 여러 번 이직을 결심했던 시점도 돌이켜보면 늘 비슷했습니다. 단순히 그 자리에 사람이 필요해서, 혹은 관성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내 업무의 전부가 되었을 때 미련 없이 새로운 도전을 찾아 떠났죠. 물론 매번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문제를 푸는 게 쉽지는 않지만, 정체되어 있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며 나아가는 과정에서 더 큰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아요. 

Q. 지현님의 전체 커리어에서 '점프업'을 경험했던 결정적인 성장 모멘텀은 언제였나요.

카카오가 로엔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을 당시 참여했던 '시너지 TF' 시절이요. 1조 8천억 원 규모의 대형 인수합병이었던 만큼, 카카오의 전사 서비스와 음악 서비스를 어떻게 결합할지 검토하는 과정이 아주 치열했습니다.

그전까지는 하나의 버티컬 서비스를 예쁘게 만들고 잘 키우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그때부터는 '회사의 관점'에서 서비스를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이 서비스가 플랫폼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결합했을 때 다른 서비스에는 어떤 영향을 줄지 한 걸음 떨어져 고민하게 된 거죠. 서비스 기획자를 넘어 '사업적 관점'을 장착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Q. 소위 말하는 '경영자적 마인드'를 갖게 된 셈이네요. 카카오의 로엔 인수처럼, 스타트업은 정답이 없고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를 푸는 곳인데요. 지현님은 어떤 식으로 스스로의 답을 찾아나가시나요. 

본질을 들여다보려 노력해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원하는 본질은 비슷하거든요.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 카카오톡이 나왔고, 더 올바른 답을 찾고 싶어 챗GPT가 나온 것처럼요.

저에게도 지난 20년간 수많은 서비스를 론칭하며 쌓인 '데이터'가 있고, 우리 경영진은 10년 넘게 회사를 이끌며 축적한 '경험'을 더해 전략적 판단을 할텐데요. 지금 이 시점에 이 결정이 왜 필요한지 '시간과 현실'에 맞춰 필터링하죠. 경영진이 더 올바른 방향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서포터로서, 저는 매 순간 "이게 지금 우리 상황에 정말 최선인가?"를 되묻습니다. 

Q. 상황에 따라 전략이 자주 바뀐다고 느끼는 실무자들에게는 그 과정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20대 때는 전략이 왜 이렇게 자주 바뀔까 의아했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목표는 고정되어 있고,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안(Tactics)만 외부 환경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한다'는 점이더라고요.

경쟁사의 상황이나 시장의 흐름이 매 분초 단위로 바뀌는데, 오전의 기획을 오후에 수정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대응일 수 있죠. 이때 기획자나 실무자가 가져야 할 태도는 '지금 이 방향이 왜 맞는지' 스스로를 설득하고 그 논리를 다지는 트레이닝을 멈추지 않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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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AI가 업무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는 시대입니다. 지현님처럼 업무의 파이프라인을 직접 짜는 '설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훈련이 필요할까요.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정의하고 정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본인이 하는 일의 목표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관성적으로 일하는, 소위 '일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머지않아 기계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큽니다.

저 역시 지금 수많은 트렌드 리서치와 조사를 수행하지만, 예전처럼 일일이 자료를 찾고 요약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습니다. 그건 GPT나 제미나이(Gemini) 같은 AI 비서들이 훨씬 더 잘해주거든요. 하지만 '어디에서 어떤 자료를 가져와야 하며, 이 데이터를 왜 봐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설계자인 저의 몫입니다.

Q. 이러한 '설계자'의 태도는 단기적인 테스크를 넘어, 결국 나의 '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저 역시 매일 고민합니다. 제가 하던 일을 AI가 너무 잘해내는 걸 보면서 "내년에는 내 자리가 없어지는 거 아냐?"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하죠. 요즘은 아예 AI를 'G 이사님'이라고 부를 정도니까요(웃음).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 사이의 복잡한 조율은 AI가 당장 대신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제가 단순히 최신 뉴스를 기계적으로 취합해 전달하는 '전달자'의 역할만 한다면 내일이라도 대체되겠죠. 하지만 우리 회사의 전략 방향에 맞춰 어떤 리서치가 필요한지 판단하고, 3시간 걸리던 일을 3분 만에 끝낼 수 있도록 자동화 파이프라인을 구축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후배들의 '오래된 미래'가 된다는 것 

Q. 서비스 기획에서 시작해 비즈니스 전략까지 커리어의 외연을 넓혀오셨어요. 앞으로 지현님이 나아가고 싶은 방향은 어디인가요.

신입사원 때부터 지금까지 특정 직책이나 거창한 목표를 세워본 적은 없어요. 다만 10년 전부터 동료들과 나누던 이야기는 있어요. 제가 처음 IT 업계에 발을 들였을 때는 네이버 이해진 의장님 같은 리더들도 30대였거든요. 선배가 없으니 당시 저희의 가장 큰 고민은 "이 업계에서 40대, 50대가 되어도 실무자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여전히 현장을 누비는 저의 선배들을 보며, 내가 이곳에서 활발히 현업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제 막 일을 시작한 후배들에게는 "나도 저기서 오랫동안 내 일을 잘해낼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적어도 지금 일을 하는 20대는 당장 30대나 40대에 내 자리가 없어질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겠죠. 우리가 미래는 아닐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미래'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Q. '오래된 미래'라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국내 IT 업계는 이제 겨우 30년 남짓 되었어요. 이 바닥에서 시작해 정년퇴임을 한 사례가 아직 아무도 없죠. 즉, 제가 지금 하는 모든 고민과 시도들이 어쩌면 업계의 '첫 번째 선례'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후배들이 제가 걸어온 길을 보며 "저 선배가 저 지점에서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놓쳤는지"를 참고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도한 '삽질'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부끄럽지 않은 일의 궤적을 남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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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마음은 컬리인들의 커리어 인터뷰 콘텐츠 입니다. 컬리의 매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가짐과 원칙으로 일하고 있는지 들려드릴게요.

작성자 이미지

공현주

좋아하는 마음으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