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큐레이션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좋은 큐레이션을 전합니다. '좋은 것을 많이 볼수록 나에게 좋은 것을 알아본다'는 믿음으로, 브랜드, 콘텐츠, 공간 등 매달 하나의 큐레이션 사례를 소개합니다.
“그러니까 실패 없는 경험을 하기 위한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문을 열기도 전부터 커피 업계의 시선이 쏠렸던 카페가 있습니다. 온라인 커피 플랫폼 언스페셜티의 첫 오프라인 쇼룸, 언페이지가 바로 그곳이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건 언스페셜티를 이끄는 안치훈 대표가 ‘안스타’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국내 대표 커피 유튜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커피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가 만드는 카페라니,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죠.
유튜버답게 준비 과정도 영상을 통해 낱낱이 공개했습니다. 카페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힌 영상을 무려 오픈 1년 4개월 전인 2025년 1월에 올린 뒤, 중간중간 상세한 과정을 꾸준히 전했는데요. 언페이지를 만든 이유로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 커피 브랜드들을 알리려면 오프라인 매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페이지는 더더욱 디테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압도적인 우수성을 증명하려면 그만큼 맛과 품질이 뛰어나야 했고요. 주변 상권을 노리는 것이 아닌 ‘최고의 커피’를 찾아오는 사람을 타깃으로 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두세 번 다시 오기 힘든 외국인 관광객이 주요 고객이라면, 무엇보다 실패 없는 경험을 제공해야 했죠. 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그 한 번의 방문과 한 잔의 커피가 마지막 경험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또한 카페의 본질은 결국 커피의 맛이기에, 그 본질에 집중한 공간이 되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런 배경에서 탄생한 곳인 만큼 언페이지는 커피 맛을 위해 정말 집요하게 준비해 왔는데요. 오늘은 이렇게 ‘실패 없는 경험’을 큐레이션 하기 위해 어떤 치열한 준비가 있었는지, 그 과정을 전해 드리려 합니다.
작은 변수 하나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실패 없는 경험’을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스페셜티 커피는 특히 예민합니다. 물의 온도, 원두의 신선도, 추출 속도 같은 작은 차이에도 맛이 달라지니까요. 그런데 고객은 그 사정을 헤아려 주지 않습니다. 결국 판단 기준은 ‘내가 마신 단 한 잔’이 전부죠. 그래서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커피 브랜드는 맛의 고점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어디서 마셔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균일함’에 집중합니다. 이게 때로는 “맛없다”는 평가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언페이지가 택한 해법은 정반대였습니다. 가능한 한 ‘변수’를 통제하기로 한 겁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물이었습니다. 커피의 98%는 물이지만, 의외로 물은 카페에서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요소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 수돗물의 염소 냄새나 잡미를 줄이려고 필터를 쓰긴 하지만, 카본 필터 하나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죠.
반면 언페이지는 아예 물 블렌딩 타워를 자체 제작해 카본·수소·미네랄·나트륨 등 5가지 필터 비율을 조절할 수 있게 했습니다. 오픈 준비 영상을 보면 시간대에 따라서도 물 맛이 달라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전과 오후의 세팅 값을 다르게 가져가며, 그것마저 집요하게 관리한다고 합니다. 신경 쓴 만큼 커피를 서빙할 때도 물을 강조하고, 컵노트 카드에 물 정보를 따로 기입할 정도였죠. ‘맛에 대한 신뢰’를 더하는 장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소한 요소까지 통제한 건 물만이 아니었습니다. 최적의 추출 속도를 맞추고 특유의 냄새를 줄이기 위해 종이 필터도 자체 제작했고요. 심지어 커피를 담는 잔도 수차례 테스트를 거쳐 만들었습니다. 도자기를 빚는 흙의 종류는 물론, 바르는 유약에 따라 향미 표현이 달라진다며 끝까지 챙기는 모습은 정말 감탄이 나왔습니다.
공간 구성도 흥미로웠습니다. 요즘 카페는 커피보다 공간에 힘을 주는 경우도 많잖아요. 물론 언페이지도 인테리어에 공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더 눈에 띄는 건 고객이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커피가 만들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카페의 상당 부분을 파인다이닝의 오픈 키친처럼 바 작업 공간으로 채워 두었고, 기본적으로 8명의 바리스타가 동시에 작업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넓혀 놓았죠. 그만큼 ‘맛’에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공간 자체에서부터 드러났던 겁니다.
모든 환대의 경험은 사람이 완성합니다
물론 이렇게 구조적으로 좋은 환경을 만들어도, 늘 최고의 커피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커피는 결국 사람이 내리는 것이고요. 더 나아가 커피의 맛은 카페의 분위기, 직원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웃음까지 더해져 완성되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죠.
그런 면에서 언페이지가 주는 경험은 확실히 특별했습니다. 오픈 직후부터 최근까지 서너 차례 들렀는데요. 대기가 마감돼 아예 들어가지 못한 날도 있을 정도로, 늘 사람이 많았습니다. 적게는 십여 분, 길게는 한 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었고요.
보통이라면 짜증이 날 법한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경험이 퇴색되지 않았습니다. 직원분들이 유별나게 친절했기 때문인데요. 이것도 철저하게 ‘준비된 친절’이었습니다. 바리스타를 단순히 추출을 반복하는 직원이 아니라, 브랜드의 얼굴로서 ‘앰버서더’라 명명하며 높은 책임감을 부여했거든요. 덕분에 단순히 상냥한 수준을 넘어, 원두와 메뉴 추천부터 설명까지 ‘전문가로서 최적의 솔루션을 준다’는 인상을 주었죠.

특히 이번 카페를 준비한 과정을 다룬 영상을 보면, 영역 별로 확고히 담당자를 세운 부분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각자의 전문성에 따라 업무 및 맛의 기준을 잡는 역할을 정하였고, 담당자에게 해당 영역에서 만큼은 독립된 권한을 보장하였습니다. 덕분에 메뉴들의 높은 완성도는 유지될 수 있었던 겁니다.
경험이 발전해야 만족감을 줄 수 있습니다
언페이지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메뉴는 중국 상하이의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OPS’와 협업해 만든 ‘펀치’와 ‘스윗티스’입니다. 투명한 라떼라는 외형부터 요거트 같은 맛까지 놀라움의 연속인 펀치, 잘 만든 디저트처럼 레이어가 또렷한 스윗티스는 확실히 맛있었습니다.

여기서 더 신기했던 건 오픈 초기에 마셨던 맛과 최근에 방문했을 때의 맛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앰버서더 분께 여쭤보니, 오픈 이후 레시피를 고정해두지 않고 계속 조정하며 발전시키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언페이지가 제안하고자 하는 건 ‘실패 없는 경험’이자 ‘최고의 맛’입니다. 대부분의 카페나 식당은 시그니처 메뉴의 레시피를 고정해 안정감을 주는 쪽을 택하죠.
하지만 고객의 기준은 시간이 갈수록 올라갑니다. 결국 멈춘 레시피는 언젠가 상대적으로 심심해지고, 만족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언페이지는 ‘최고의 경험’이란 고정된 완성형이 아니라, 계속 발전하는 상태라고 정의한 듯했습니다.
물론 이 선택은 꽤 위험합니다. 변화는 언제든 “맛이 달라졌다”는 부정적 평가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언페이지는 그 리스크를 감수하고 ‘계속 나아가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들의 집요한 디테일 추구가 멈추지 않는 이유는 ‘완성’이 아니라 ‘진보’에 방점이 찍혀 있었던 거죠.
쌓이면 쌓일수록 밀도는 짙어집니다
이렇게 ‘압도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곳답게, 언페이지의 문턱은 낮지 않습니다. 특히 많지 않은 바 자리에 앉으려면 긴 대기를 각오해야 하죠. 저도 이번만큼은 여유롭게 앉아 온전히 커피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마음먹고 기다렸는데요. 그 시간 동안 유독 눈에 들어온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기 줄 앞에서 계속 흘러나오던 ‘안스타’ 채널의 영상이었습니다.

영상은 유튜버 안스타의 해외 카페 탐방기였어요. 호주, 일본 등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현지의 유명 카페와 로스터리를 방문하는 내용이었는데, 보다 보니 묘한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이거, 언페이지에서 봤던 건데?” 하는 순간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거든요. 그가 체험했던 카페들의 요소가 언페이지 곳곳에 녹아 있는 듯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시아인 최초로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에 오른 ‘히데’가 운영하는 도쿄의 프라이빗 카페 ‘코쿠운’. 이곳은 일반 수돗물이 아니라 유명 사케 산지의 물을 탱크로 가져다 쓰고, 변수 통제를 위해 여러 기물과 프로세스를 집요하게 세팅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언페이지가 물과 도구, 동선까지 집착하듯 관리하는 방식도 이런 유명 카페에서 보고 배우며 쌓인 감각이 기반이 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언페이지는 ‘오늘’도 좋지만 ‘내일’이 더 기대되는 곳입니다. 지금도 충분히 좋은 커피를 맛볼 수 있지만, 다음번에는 더 나아진 버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거든요. 멈춰 있지 않고 계속 발전하면서도, 그 변화를 ‘실패 없이’ 전달하기 위해 디테일을 끝까지 붙잡는 공간. 언페이지가 말하는 ‘실패 없는 경험’이 단지 한 번의 완성형이 아니라, 쌓일수록 더 짙어지는 과정이라는 걸 이번 방문에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 번쯤 꼭 들러 카페의 본질인 ‘맛있는 커피’를 제대로 경험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